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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이석원 - 보통의 존재

by Desmios 2015. 6. 5.
보통의 존재 - 2점
이석원 지음/달

  지난 2월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재미있게 읽은 후, 독후감을 쓰려고 했으나 책의 주제인 "사람에게는 불행해질 권리, 고독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잘 풀어 낼 수 없어 아직까지도 독후감을 끝내질 못하고 있었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를 읽은 후, <멋진 신세계>의 독후감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불행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불행은 인생의 근간이자 창작의 자양분이다. 인생의 어두운 면을 보는데 특출난 재능이 있고, 불운함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불행해질 권리가 필요하다. 아주 주관적인 생각으로 이석원에게 불행해질 권리가 없다면 그는 분명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 보통의 존재>(언니네 이발관)와 같이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노래와 달리 너무 불편했다. 노래는 뚱까띵까 기타소리랑 감미로운 목소리가 가사의 우울함을 잘 덮어주어 멋진 요리를 만들었다면, 책은 목소리만 있다는 것이었다. 요리로 말하자면 기름으로 튀기지도 않은 생감자를 치즈도, 케챱도, 소금도 없이 그냥 씹어 먹어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감자를 싫어한다. 
  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떠나간 너 안녕 안녕, 나는 개를 많이 키우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후유 어쩌고 저쩌고.. 너무 오글거려서 읽는 것이 힘들었다. 세상 불행 다 짊어 진 것 같은 맥빠진 목소리를 한 권이나 되는 책으로 엮어 내는 것도 재능이다. 이런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딱 이런 느낌...

출처: '밀아'님 블로그 스타2 광전사(Zealot)의 대사중



  내가 읽으며 투덜 거리자 애인이 그럼, 책을 왜 읽고 있냐고 물어봤다. 왜냐면 나는 어디에선가, 이 책이 요즘 청년들의 힘든 자화상을 보여준다 어쩐다 하는 소개 글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습지 생태보고서>랑 착각했는가보다. 착각의 대가는 오글거리는 괴로움이었다.

  사실 엄청나게 더 까고 싶지만, '어떤' 생각이 들어서 더 하질 못하겠다. 그 생각이란, 왠지 저자가 자기 이름이랑 책 제목을 검색해보다가 내 글을 발견하면 충격이나 상처를 받아서 고소 하거나 '네가 뭔데 나를 이래저래 재단하느냐' 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들 것 같다(혹은 자기 블로그에 이러이러한 글을 봤는데 어쩌고 저쩌고 한다던가)는 것이다. 내 블로그가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곳도 아니니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 나온 저자의 소심함과 궁상스러움과 이를 살짝 감춰 포장한 표피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 욕을 하기가 어려워 진다. 집에서 혼자 나를 저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성격치고는 대체 무슨 생각에선지 자신의 속내를 이 많은 나무를 종이로 바꿔가며 책으로 냈으니 욕 먹을 마음 준비를 하고 책을 냈겠거니.. 하고....

님(의 책) 너무 찌질해요... 말 줄임표 남발하지 말아주세요. 저 너무 불편해요.


  이런 점을 버틸 수만 있다면, 생각해 볼 만한 좋은 화두를 찾을 수 있다. 

말과 선언

p.144

나는 여태껏 몇 명의 사람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왔나.

그 말을 해주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으며

지금은 또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왜 어른들은

일생에 여러 번의 사랑이 있을 거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나.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과 헤어졌다고 해서, 그 사랑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얘기하거나, 그 사람을 사랑했었다고 말할 때의 '사랑'은 다른 사람과 하는 사랑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적용되는 절대적인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해서 쉽게 손가락질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둥, 너는 사랑을 모른다는 둥, 걔가 널 사랑하는 게 맞긴 맞냐는 둥. 사랑을 평가 할 수 있는 건, 나와 바로 그 사랑을 나눈 상대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독특한 성격과 성향, 지향, 생김새가 있는 것 처럼 그런 사람들이 만나서 만드는 사랑과 감정도 독특하다. 남들은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휘둘리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이 잘못된 게 아닐까 의심하는 것도 부질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 말에 대해서 이래저래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생각했다가 잊어버리고 썼다가 지우면서 결국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래 피상적인 말 뿐이다. 그래도

말줄임표랑 이상한 줄바꿈은 안했다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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