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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J. R. R. 톨킨 - 북극에서 온 편지

by Desmios 2015. 11. 1.
북극에서 온 편지 - 6점
존 로날드 로웰 톨킨 글.그림, 김상미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영어 원제는 "Letters From Father Christmas" 산타를 파더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건가 싶지만, '산타 할아버지로부터의 편지들'이라고 하기엔 확실히 부족해 보인다. 


책의 내용은 톨킨이 산타 할아버지로 분하여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놓은 것이다. 첫 번째 편지는 톨킨의 첫째 아이인 존이 세 살 되던 해인 1920년에 도착했으며, 이어서 마이클, 크리스토퍼 그리고 프리실라가 유년기를 지낸 20년의 세월동안 매해 크리스마스에 도착했다. 편지는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간 다음날 아침 집에서 발견되거나, 때로는 우체국 아저씨가 가져오기도 했다. 



북극곰이 거실을 얼려버린 날 

1928. 12.20.

크리스야 사랑한다. 마이클 너도 사랑한다. 이제는 너무 커서 나에게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지만(그래서 널 상상하며 그려야 했단다. 아무쪼록 그림이 마음에 들면 좋겠구나. 북극곰이 선택한 거란다. 녀석은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대. 왜냐하면 네가 곰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구나) 존, 너를 빼놓을 수 없지. 사랑한단다. (p.28)


북극곰 실종 사건의 전모 

1932. 12. 23. 

존, 마이클, 크리스토퍼, 그리고 프리실라에게 내 사랑을 보낸다. 엄마와 아빠, 고모에게도, 너희 집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내 사랑을 보낸다. 존은 이제 양말을 걸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새로운 아이들이 첫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단다. 하지만 양말을 걸지 않는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널 잊는건 아니니 염려말아라. (p.65)


언제까지나 너희를 기억하련다

1943. 크리스마스

행복한 크리스마스구나! 네가 올해도 양말을 걸어놓기로 한 걸로 안다. 네게 줄 작은 선물이 있단다. 이제 "잘 있어"라는 작별인사를 해야겠다. 하지만 널 잊지 않을거야. 우린 옛 꼬마친구들과 그들이 보내준 편지를 잘 간직하고 있단다. 그들이 자라서 집을 꾸미고 아이들을 낳게되면, 우린 다시 만날 거라 믿고 있지. (p.122)

 


보낸 사람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이지만 그 글을 쓴 사람이 톨킨이라는 것을, 어른인 우리들은 알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점점 살이 붙는 산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지게 된다. 산타 할아버지는 북극이 너무 추워서 떨리는 글씨체로 편지를 보내고, 산타 할아버지를 도와주며 말썽을 부리기도 하는 북극곰은 큰 발 때문에 큼직큼직한 글씨체로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에는 북극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 아이들의 답장에 대한 이야기와 안부를 전하고 있고 글과 함께 따뜻하고 귀여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을 때도 있다. 


북극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는지를 써버리면 책 읽는 재미가 없어질 테니까 그 내용은 생략하고, 이 감상문에서는 '전쟁의 흔적'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다. 1920년부터 마지막 편지인 1943년까지, 북극에서 이런 저런 재미있는 사건과 도깨비들과의 전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북극 아래의 세계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1939년~1945년까지의 제2차 세계대전[각주:1]이다. 



북극에 있는 절벽 위의 집에서 

1938. 12. 24.

사랑하는 프리실라에게

네가 공부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두 번이나 편지를 보내줘서 정말 고맙구나. 

올해는 굉장히 바쁜 데다가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더 힘들단다. 많은 우편배달부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내 사랑을 크리스토퍼와 마이클 그리고 존에게 전해주렴. 네가 오빠들에게 편지 쓸 때 말이야. (p.108)


북극곰, 펭귄과 춤을 추다

1940. 크리스마스 이브

짧은 편지를 전하며 프리실라가 제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기도한다. 내 사랑을 크리스토퍼에게도 전해주렴. 올해는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 이 무서운 전쟁 때문에 우리 저장창고의 물건들은 줄어들고 있고, 너무 많은 나라의 아이들이 집을 떠나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단다. 북극곰도 우리 주소 리스트를 다시 고치느라고 애를 먹었지. 프리실라는 이사를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p.112)


북극곰의 대활약

1941. 12. 22.

올해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주어서 정말 고맙다. 이제 내게 편지를 보내주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 아마도 무서운 전쟁 때문에 그런 것 같구나. 전쟁이 끝나면 다시 좋아질 거고, 난 전보다 더 많이 바빠질 거야. 하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 때문에 집을 잃고 가족들도 잃어버렸단다. 세상의 반이 잘못 돌아가고 있어.

전쟁은 여기 북극까지 문제를 주고 있지. 내 저장창고에 생긴 문제뿐만이 아니란다. 물론 선물들도 점점 줄어 들고 있단다. 지난해부터 부족해진 선물들을 다시 채워놓지 못하고 있단다. 그래서 지금은 너희가 바라는 선물이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을 보내야만 한단다. (p.114)


선물 저장창고가 비어버린 절벽 위의 집에서

1942. 크리스마스 이브

곧 선물들을 다시 보충해 놓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단다. 소모적이고 맹렬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 날 슬프고 걱정되게 만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집은 피해를 입고, 사람들은 집을 잃어버렸지. 네가 사는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시무시한 일들 때문에 배달하는 일도 올해는 전보다 더 힘들어졌구나. 물론 북극은 다시 예전처럼 즐겁고 평화롭단다. 

오늘밤에 내가 편지와 선물을 보내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편배달부가 많이 부족하단다. 어떤 집배원은 아이들을 찾느라고 며칠 동안이나 돌아다녀야 한단다. (p.118, 120)


언제까지나 너희를 기억하련다

1943. 크리스마스

우편 배달부가 그러는데 사람들이 올해를 "잔인한"해라고 부른다는 구나. 내 생각에 너무 비참하다는 뜻을 표현한 듯하구나.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 비참하게 변해서 난 두렵단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아직까지 괜찮으니까 다행이다. 비참해지지 말기를! 난 아직 살아 있고 크리스마스가 오면 다시 돌아올 거란다. 영원히. (p.122)



크리스마스와 전쟁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라 하더라도 전쟁의 암운이 피해갈 수는 없다. 전쟁이 일어나면, 크리스마스도 더이상 크리스마스 일 수 없고 우편배달부도, 아이들도 사람들이 죽는다. 그 사실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황현산. 2013. 밤이 선생이다. 中 "나는 전쟁이 무섭다"


  남북 관계가 또다시 불행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애써 쌓아올린 화해의 분위기는 물거품이 되고, 분노가 용기를 대신하려들고, 불신이 지혜를 가장한다. 어느 원로가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했다는데 나는 전쟁이 무섭다. 

(...)

  전쟁은 늘 이렇게 일어난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었다. 전쟁은 바보짓이다. 분쟁의 해결책 가운데 전쟁보다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은 없다. 전쟁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인간을 인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어떤 명분도 이 비극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핍박받는 민족의 독립전쟁 같은 것을 거론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핍박하는 일도 실은 전쟁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쟁은 단순한 추상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포탄이며, 구덩이에 파묻히는 시체 더미이며, 파괴되는 보금자리이며, 생사를 모른 채 흩어지는 가족이다. 이 5월에 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소년들은 어느 골목을 헤맬까. 지금 축제를 벌이는 젊은이들의 소식을 어느 골짜기에서 듣게 될까. 공부하고 일하고 춤추는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그들이 훈장을 뽐내며 돌아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젊은 날의 꿈이 사라진 자리에는 마음의 상처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을 볼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민족의 절망일 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 능력을 스스로 멸시하고, 우리가 이 민족이었던 것을 저주할 것이다. (2010 p.46,48)



  나 역시 전쟁이 무섭다. 내 친구들과 내 가족이 누군가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죽게되는 것이 두렵다.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소중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 슬프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왔지만, 한창 연평도 포격사건, 천안함 사건이 있던 시기에 전쟁이 터지면 자원 입대해 빨갱이들을 쳐죽이겠노라 말하는 동년배에게서는 전쟁을 현실로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읽을 수 있었다.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상대에게, 그 상대도 인생이 있고 연인이 있고 가족과 친구들이 있을 것이라는 단 한줌의 맥락도 떠올리지 못하는 둔감한 공감능력에 나는 치를 떨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도 죽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할까? 


  북극에서 온 편지에까지 전쟁의 참혹함이, 두려움이 묻어날 정도이다. 그렇다면 실생활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써있지 않아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비참해지지 말기를!" 애국과 전쟁을 혼동하지 말았으면 좋겠지만, 글쎄 내 말이 나약한 비겁자의 칭얼거림으로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자원입대하겠다는 자신을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뀌었을지 모르겠다. 



  1.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지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은 전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2차 세계대전 [Second World War / World War II, 第二次世界大戰] (두산백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