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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가는 편지 Pentax K20D, F9.5, 1/750초, ISO 200, 32mm(18-55) 2010-03-26, 을왕리 가는길 엽서를 쓰면, 철새가 돌아오는 10월에 발송해준다는 우체통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보세요"라는 말에 나는 제일 먼저 그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엽서와 펜을 들기는 쉬웠으나 그 위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가는 것은 어려웠다. 사실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요즘 나는 어떻게 지내느냐. 그와는 어떻게 되었느냐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의 내가 과연 그 질문에 대답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내 자신에게도 더 이상의 말을 쓸 수는 없었다. 편지가 오는 그 때, 우리는 어디를 쳐다보고 있을까. 왜,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말도 하기 .. 2011. 6. 1.
햇빛 노란 텅빈 거리의 꿈 Pentax K20D, F8, 1/1500초 ISO 400, 55mm(18-55) 2010-02-26, 수원화성 성벽 같은 삶을 반복해서 다시 사는 꿈을 꾸었다. 꿈을 깨기 직전에는 지금까지 삶아왔던 모든 삶들이 한 눈에 흘러가며 나를 아련하게 했다. 강압적이고 아버지였던 나는 가족 식솔을 이끌고 세계 멸망의 날에 도망 다니다가 가족들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순간에 같은 삶을 다시 살 기회를 갖게 되었다. 비슷한 삶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었고 가족들을 억압했다. 다시 사는 삶속에서도 또다시 멸망의 날이 왔고, 나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가족을 잃어 버리고 혼자가 된 나는 늙어가며 가겟방 아줌마와 재혼을 하기도 했다. 지저분하고 술에 취해있는 괴팍스런 늙은이. 그런데도.. 2011. 2. 13.
숲 속에서 Pentax K20D, F5.6, 1/250초 ISO 400, 55mm(18-55) 2010-06-19, 가평 여름의 초입에 문득 나무가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 삭막한 도시에서 벗어나 초록의 공간에서 호흡하고 싶다. 소슬비가 내리는 주말, 어디로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 도서관 뒷길을 올랐다. 비가 많이 오면 물길로 변할 고랑을 건너며 물안개가 살작 낀 숲 속에서 우산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우산을 접고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가느다락 빗줄기를 맞고 있으니 비가 따스하게 느껴진다. 이 곳은 고요하지만 적막하지는 않다. 빗방울 소리가 숲 속을 채운다. 토독토독 작은 파열음 사이로 저 멀리 도서관 환풍기의 소리가 섞여 이 곳은 현실에서 살짝 빗겨 있는 것 같다. 보드라운 융단을 깔아 놓은 것 처럼 보이는 .. 2010. 12. 29.
낭만주의자를 위한 시대란 어느 시대인가? ; 우리 시대의 낭만 낭만주의자는 모든 시대 속에서 마이너리티 취급을 받아왔다. 어느 시대고 진정한 낭만주의자들은 그 시대에 속하지 않은 괴짜의 역할이었다. 현실적인 '생활'에 기반하지 않은 낭만주의자들은 소유를 포기한 히피(부랑자)의 모습이거나 노동이 필요 없는 귀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너무 많이 가져서 더 가지려고 할 필요가 없거나, 아예 가지지 않으려는 것들은 낭만주의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딴 세계의 일이었다. 가진 것, 지켜내야 할 것이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에 대한 소속감도 책임감도 없는 법이다. 때문에 그들은 자유가 주는 외로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 이외에 무엇으로도 자신을 옭아매지 않는다. 때문에 현실주의자들은 낭만주의자들을 무책임하다고 손가락질하며 '시대의 표류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2010.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