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제목이 원제 그대로인 '친밀성의 구조변동[각주:1]' 이었으면 아마 아무도 이 책을 들고 다니는 나에게 호기롭게 "역시 이런걸 읽어야 하는 것 같아"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말했거나 말하지 않았거나 상관 없이 관심을 갖고 이 책을 뒤젹어 본 사람들은 모두 책을 탁 내려놓고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나 역시 과제를 하느라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되었지만 다 읽은 다음에는 나름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이제 목에 힘좀 주면서 흠 앤소니 기든스의 친밀성의 구조변동이라는 책에 의하면 말이야.. 라고 할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읽는 동안에는 당장 영국으로 폭탄이라도 한상자 실어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말이다. 거의 막판인 8장까지 와서는 이빨을 북북 갈면서 '책으로 마스터베이션을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정말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쓴 책이 아닌가' 하고 분노했지만 다 읽고 한 번 더 읽고 발제까지 끝내고 나니까 이젠 편안한 마음이 들어서 친구들에게 '재밌는 개념을 읽었다'며 한참을 열정적 사랑이니 낭만적 사랑이니 하고 설명하고 있다.
책의 내용 요약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의 사회학 용어들(공/사 영역 분리, 섹슈얼리티, 재생산, 합리성, 타자 등)과 조금 공부가 필요한 용어 (감시와 처벌, 서사 등)를 알아 들을 수 있다면 (더 기본적인 수준의 용어인 ; 사회구조, 억압과 해방, 거시사회학, 페미니즘, 도착은 물론이고) 책의 맨 처음에 있는 역자들의 '이 책을 펴내며 : 현대성의 그림자 혹은 탈출구'를 보는 것이 가장 명쾌하다. 책을 한 번 읽은 다음에 이 것을 읽으면 '이게... 글쓴이가 이렇게 엉망으로 어렵게 쓴 건가 역자들이 진창으로 말을 꼬아놓은 것인가' 하는 의심도 사라지고 '세상에, 이런 얘기를 쓴거였어?'하고 확 와닿는다.
성은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온 인간관계와 사회적 제도의 장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으로부터 섹슈얼리티만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에 대한 관심이 소중한 까닭은 성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의 인간관계 속에 스스로를 위치 짓는 중요한 기준점이며 그것을 통해 삶의 모든 면을 다시 성찰하는 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립되고 신비화된 성의 세계에 함몰되어서는 안 되며, 연애․사랑․결혼․가족․외로움․증오․수치심 등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은 제도들과 인간적인 감정들이 뒤얽혀 있는 관계망으로서 섹슈얼리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아가 우리가 ‘(사회)구조’라고 불러온 것들, 즉 생산과 소비와 지배가 조직되는 (공적)영역의 변화 속에 그러한 관계망을 정당하게 위치지울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억압의 기제와 해방의 잠재성들을 새롭게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은 성과 사랑에 대한 일상적․개인적 관심과 더불어 사회적․문명적 차원의 궁금증을 함께 품고 있는 독자들에게 특히나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기든스는 가장 사소해 보이는 삶의 일상성으로부터 장구한 역사를 관통하는 커다란 흐름까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철저하게 서구사회의 자료를 동원하여 풀어나가고 있는데도 우리에게 이만한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서구적 현대성의 전지구화가 진행되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기든스의 논의는 섹슈얼리티를 서구 사회에서의 ‘현대성(modernity)'의 전개와 공/사(public/private) 영역분리라는 구조적 변동과 연관시켜 분석하는 것이 된다. 이 책에서 기든스가 펼치고 있는 논의의 의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쟁점과 관련시켜 볼 때 주목할 만하다.
우선 첫 번째로, 기든스는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대성(modernity)'에 대한 논의와 섹슈얼리티 문제를 어떻게 연관시켜 분석하고 있는가. 기든스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내부-준거적 체계(internally referent system)라는 점에서 전통사회와 구분된다. 이전에는 관습이나 전통, 아니면 자연의 명령에 따라서 이루어졌던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들이 점차 사회 체계의 내적 논리 속으로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재생산(자녀의 임신과 출산)이 자연의 섭리이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던 현대 이전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 역시 자연으로부터 이미 결정되어 주어지는 것이었으나, 재생산 없는 섹슈얼리티(피임)와 섹슈얼리티 없는 재생산(시험관 아기 등의 테크놀로지)이 모두 가능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성이 더 이상 단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로 변해가고 있다.’조형적 섹슈얼리티(plastic sexuality)'는 기든스가 이러한 상황을 조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한편 인간관계 역시 더 이상 관습이나 전통에 따라 유지되지 않고, 각각의 개인이 그 관계에 부여하는 의미와 관계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그 형태와 존속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한번 결혼했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식의 전통적 결혼관계가 관계 ‘외적’인 관습과 전통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결혼생활을 통해 줄기차게 배우자의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사랑이 없다는 결혼관계를 미련 없이 깨어버린다거나 혹은 사랑하면 되었지 결혼이라는 형식이 왜 필요하냐는 식의 인간관계는 그 관계에 ‘내적인’ 속성에 대한 당사자들의 판단에 따라 지속 여부가 좌우되는 것이다. 혈연에 의해 의무처럼 부과되던 친족관계가 점차 엷어지고 친밀성과 애정에 기초한 관계가 보다 중시되는 것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기든스는 이처럼 관계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 그 자체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유지․변화 되는 관계를 ‘순수한 관계(pure relationship)'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더불어 현대사회는 합리적 이성에 따라 조직됨으로써 감정의 문제를 사적 영역으로 추방하였다. 현대적인 정치제도와 권력․행정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공/사 영역의 분리가 이러한 이성/감정의 분리, 곧 남성/여성의 분리라는 사회적 현실을 낳았다. 나아가 양 성의 심리적 지향이나 자기 정체성 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기든스는 오늘날 개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불거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들 -결혼, 자녀양육, 가족, 자기정체성과 관련된 갈등 - 이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공개적인 이성의 영역 - 혹은 하버마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공적 역영(public sphere; 혹은 공론장) - 과 대비되는, 이제껏 베일에 가려져 있던 친밀성의 영역 - 곧 사적 영역 -에서 지금까지 엄청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공/사 분리에 의해 친밀성 영역의 전문가가 되어버린 여성들이 바로 이러한 혁명의 담당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 기든스의 주장이다.
그런데 왜 기든스는 유독 ‘친밀성의 영역’을 주목하는 것일까. 하버마스의 역저 『공적 영역의 구조 변동』을 통해 널리 알려진 것과도 같이, 현대성의 가장 큰 생명력은 민주적 소통구조를 통해 비판적 합리성이 성립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기든스 역시 섣부른 ‘포스트(post)' 주의를 경계하며 그 나름대로 ’후기 현대(late modern age)'의 특성들을 성찰성을 중심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기든스는 단지 공적 영역 또는 제도화된 정치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정치’라는 쟁점으로 이동해 가며, 급기야 계몽의 유산이 체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감정의 영역, 친밀성의 영역을 다루기에 이른다. 가장 권위 있는 현대성의 옹호자로써 하버마스가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소통을 하나의 전범으로 제시한다면, 기든스는 그 배면에 있는 가장 사적인 영역, 곧 ‘친밀성’ 영역에서 일어난 사회․심리적인 변동을 추적함으로써 현대성의 그림자를 들추어내려 한다. 하버마스가 계몽의 이성을 방어하려 한다면, 기든스는 이성의 뒷면, 곧 감정의 세계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속속들이 파헤치려 한다.
그러나 기든스는 욕망이나 충동, 심지어 도착과 변태를 다룰 때조차도, 언제나 예의 뒤르켐적 발상에서 출발한다. 즉 욕망이 암시하는 새로운 해방의 미학적이고 카니발적인 함의에 빠져버리기 보다는, 언제나 그러한 해방을 가능케 하고 또 지식시킬 수 있는 규범과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든스가 명시적․암시적으로 설정하는 몇 가지 이론적 구분선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우선 기든스는 현대성 비판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푸코의 주장에 대해 논박해 들어간다. 기든스가 보기에 이성은 분명 인간생활의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측면들을 배제함으로써 현대성의 위기를 초래했지만, 그러나 그것을 푸코처럼 감시의 증대와 기율 권력의 확산을 통해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감시는 단지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지배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이고 제도적인 수준에서 성찰성(자기 감시)의 증대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개인 주체와 사회 체계 전체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성찰성이야 말로 현대성의 전개에서 결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기든스는 남녀 간의 심리-성적 차이를 다루는 프로이트의 논의와 그에 대한 급진적 해석들도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단순한 지지도, 완전한 배격도 아니다. 이론적 신대륙의 도약에 희망을 걸기보다는, 사회 속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탐색하는 가운데 사회 이론의 실마리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기든스는 현대 사회병리로 지적되고 있는 여러 가지 중독(알코올, 약물, 나아가 섹스 중독)의 사례들을, 특히 당사자의 자기 자신에 대한 서술(‘자아의 서사’)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대인관계나 처세술을 다룬 대중적 출판물들도 주저 없이 자신의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삶 속에서 ‘일상적인 사회적 실험’을 행하고 있다고 보고 이로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큰 흐름을 읽어내려는 분석 전략을 취함으로써, 그는 일찍이 자신이 제시한 바 있는 ‘구조화 이론’의 기본 입장을 체현하고 있는 듯하다.
기든스의 논의를 살피면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쟁점은, 과연 이러한 논의가 품고 있는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현대 사회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기든스의 관심은 간단히 말하자면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그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공적 영역에 국한시키지 않고 개인적인 관계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려 한다. 섹슈얼리티 역시 기본적으로 나와 타자의 관계, 곧 인간관계의 문제인 것이다. 내일이 결코 오늘과 같을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계속 선택해 나가야 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정해진 전통이나 관습에 따르기 보다는 그 관계가 갖는 의미와 그것의 지속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협상해야 한다. 이러한 협상의 과정은 관계 외적인 것들이 지탱해주는 관계에 안주하는데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들고 괴로운 과정일 수 있다. 그러나 기든스가 보기에 이러한 추세의 확산은 이미 움직일 수 없는 대세이다. 이미 부상 중인 순수한 관계, 조형적 섹슈얼리티 그리고 합류적 사랑은, 타자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개방되고 평등한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협상되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이 열리는 이러한 협상의 영역이야말로 상호 인정에 기반을 둔 소통의 잠재력이 자라나는 곳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의 민주화’를 이야기 할 수 있다. 기든스는 바로 이 민주주의, 사적 영역이자 친밀성의 영역 속에서 확장되고 있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싹을 체계 내로 얼마나 수용하고 포괄할 수 있는가 에 따라 현대성의 앞날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세 번째로, 기든스의 논의는 이즈음 활발해지고 있는 페미니즘 논의에 대해서도 상당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기든스는 공/사의 분리, 이중 규범의 존재, 모성의 발명 등에 대한 페미니즘의 이론적 성과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으며, 현대 사회가 (성을 억압했다고 하기는 어려울지언정) 여성을 억압한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남성들이 관계 외적인 것에 의해 지탱되는 관계나 자기 외적인 것에 의해 지탱되는 자아정체성에 안주해 옴으로써 결과적으로 감정적, 정서적으로 취약해진 반면, 기존의 제도들로부터 억압받아온 여성들이 오히려 사적 영역 속에서 고유한 친밀성의 세계를 발전시켜 왔다고 본다. 현대의 여성들은 친밀성 분야의 전문가로 등장하는 반면 남성들은 여성들이 그들에게 공모해주느냐 반란하느냐에 따라 불안에 떨고 고통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새로이 일어나는 친밀성의 혁명에서 주된 역할을 맡을 존재로서 기든스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인 것이다.
이 부분만 가지고 얘기한다면 그의 견해는 여성의 모성적 특성으로서의 보살핌과 관계적 자아로부터 여성해방의 힘을 발견하려고 하는 캐롤 길리간이나 낸시 초도로우 같은 페미니스트의 입장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기든스의 논의는 그녀들과는 달리 여성의 정서적 우월성이나 모성이라는 자연적 속성이나 자녀양육이라는 사회적 역할로부터 토출해 내지 않고 (서구 사회의) 실제적인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끌어낸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남성과 여성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의 정도에 대한 기든스의 묘사가 아무래도 자기와 같은 성(즉, 남성)을 좀 더 동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사랑과 가족의 변화가 현대성과 맺는 관계를 꼼꼼히 추적한 그의 논의는 페미니스트들로서도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특히 사랑(열정적․낭만적․합류적 사랑)에 대한 그의 분석은, 여성문제를 고민하다보면 한번쯤은 꼭 부딪히게 되는 문제,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알지 못할 거대한 벽을 사고해 볼 도구를 제공해 주는 것 같아 반갑다. 꼭 거창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할지라도 얼마나 많은 여성의 삶이 사랑 앞에서 형편없이 좌절하고 연약해 지고 마는가를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사랑 그 자체를 반추해 볼 만한 틀거리를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쁜 마음이었다.
-배은경, 황정미
다른 것들은 다 제치고 결국 주제는 '자기를 좀 알고, 다른 사람도 좀 잘 알아본다음에 평등한 관계를 맺자' 인 셈인데 이 말을 그렇게 이 것 끌어와서 이렇게도 꼬아서 얘기 할 수 있다는 것도 참 능력인 것 같다. 내가 얼마전에 닌텐도 보고서 때문에 말을 너무 어렵게 쓰는 게 아닌가 고민할 때 싸이 일기장에 과 선배[각주:2]가 남겨준 말이 있는데 그 말을 기든스씨가 좀 들어야 할 것 같다.
흥미로운 개념(아무르 빠숑에 빠져버렸어!)들과 38년 범띠 기든스씨에 대해서 할 말이 많긴 하지만 그랬다간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이정도만 투덜거리기로 하고... 부족하지만 혹시나 관련된 개념에 대해서 누군가 질문을 남겨주신다면 기억 닿는, 이해 한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답변하겠습니다. 굽신굽신.
아, 단, '경헙의 격리'는 제외하고. 그건 진짜 찾아봐도 안나오고 아무래도 모르겠고 교수님도 다른사람한테 결혼 얘기 시키느라 바빠서 설명도 안해주시고.. 누구 친절한 사람이 설명 안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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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벌써 죽은줄 알고 '기든스 널 두번 죽이지 못하는 게 한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안 돌아가셨더라. 책... 또 쓰면... 좀 곤란한데.. 에휴..
The Transformation of Intimacy: Sexuality, Love and Eroticism in Modern Societies. [본문으로]
주옥 같은 말을 많이 해주는 선배인데, 주옥 같은 말도 많이 하지만 그게 절대 필터가 없다는 게 참...ㅋㅋㅋ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