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관련 직종 취업을 노리고 있으니 청소년 관련 도서를 읽어야겠다! 싶어서 청소년 코너에 있던 책을 골랐다. <이십대 전반전> 이십대를 앞 둔 청소년들이 알아야할 이십대의 일들이 써있는가 싶었는데 왠 걸, "살기 개 힘들어 헉헉 힘들다! 어서와 너도 이십대지? 학생은 이제 끝났어 사회에 온 걸 환영은 안하지만 헉헉" 이런 내용이었다.
왜 이런 책을 쓰는 거야? 가 아니라, 이게 왜 청소년 코너에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에게 항상 꿈과 희망만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비관 일색으로 짠 국에 살짝 설탕을 넣어 무마시킨 책을 읽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경고를 받았든지 아니든지 어차피 사회와 세상은 차갑고 못됐는데 말이다.
후기, 게임을 끝내는 방법
홍지선
pp.266-267
배틀로얄 게임은 한국의 이십대가 처한 상황과 여러모로 닮았다. 처음부터 다른 조건에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건 스펙 경쟁과 비슷한다. 게임에 시간제한이 있다는 설정은, 재수생은 패배자이고 취업에는 적정연령이 있으며 인생에는 정해진 단계가 있다는 고정관념과 잘 들어맞는다. 서로가 적이고 남을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는다는 건 왜곡된 경쟁구조를 반영한다.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규칙은 극소수만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배틀로얄 게임이든 한국의 이십대가 참여하고 있는 세상살이의 게임이든,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구조 속에서 진행된다.
샤 대학 출신들도 이렇게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책까지 내는데, 다른 대학 혹은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말인즉슨, 이미 어두컴컴한 내 꼬라지에 이런 책을 읽어봐야,더 한참동안 앞날은 계속 캄캄할 거에요 라고 알려준들 무슨 효용이 있을까?
사랑해본 적 있나요? 中 건어물녀의 변
문수현
pp.156-157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랑이런 건 언제나 난해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이라고 운을 떼며 세상은 크게 두 가지 충고를 해줬는데 '예뻐져라'와 '똑똑해져라'가 각각 그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아무리 봐도 모순되는 요청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예뻐진다는 것은 곧 소비기호와 친해지는 일이었다. 곧 헬스장을 끊어 꾸준히 몸매를 가꾸고, 유기농, 웰빙, 저지방 같은 말을 앞에 붙이고 적게는 200원에서 많게는 수 천 수 만원이 더 비싼 음료와 음식을 섭취하며, 보다 많은 가짓수의 화장품을 바르고 보다 많은 옷과 가방과 구두를 갖추는 일,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적금을 털어 성형 수술이라도 할 각오를 다지는 일이었다. 그것은 사회가 제시하는 미적 가치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은 사랑할 준비가 또는 결혼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반면 '똑똑해진다'는 것은 그보다 더 복잡한 일로써, 세상의 기만된 요구를 꿰뚫어보는 힘을 갖추는 것이었다. 세상이 떠먹이려하는 수많은 미적 욕망들 가운데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욕망이며,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가려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여성들은 진실을 빤히 꿰뚫어 본 뒤에도 소비적 미 속에 자신을 던져 넣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을 위해 소비기호와 결합하라는 것이 얼마나 지신의 행복과 무관한 요청인지를 깨달은 뒤에도 모르는 척 또는 순전히 자기만족인 척하며 '여자라서 행복한'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여성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서로 모순되는 두가지 요청을 뛰어난 연기력 속에서 잘 소화해내는 일이었다. 한 쪽 가치가 다른 한 쪽을 말살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이렇게 사랑하기 힘든 세대라는 말을 하다가, 자신은 운 좋게 아주 괜찮은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얘길 한다. 태생적인 아름다움도, 영리한 머리도, 아름다움을 교정할 돈도 없으면 좋은 사람을 만날 운이라도 있어야 하는 얘기 같다. 그렇다면 그런 남자를 만나지 못한 다른 건어물녀들은 그냥 그렇게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운 나쁜 연애만 하거나 못하다가 늙어 죽어야 할까?
"사랑의 순간은 그렇게 뜻밖에 찾아왔다. ... 세상에 없을 줄로만 알았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일, 그 한 순간의 기적이 바로 사랑이었던 것이다."
나도 물론, 세상에 아직 진짜 괜찮은 남자가 있고 그 남잘 만나면 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괜찮은 남자 한 명을 내가 지금 사귀고 있으니, 그럼 세상에는 괜찮은 남자 한 명이 솔로에서 커플로 상태 변경이 된 것인데 다른 여자들은 누구랑 사귀나? 덜 괜찮은 남자, 안 괜찮은 남자?
한참 칼날바람 부는 사랑찾기의 고달픔을 운이 좋다면 괜찮은 남자가 있다는 희망으로 무마시키기에는 너무 억지 아닌가 싶다.
두 가지 시선으로 잉여 읽기 - <가난뱅이의 역습> VS <하류지향> 中
가난뱅이들이여, 궁상으로 대동단결! - <가난뱅이의 역습>
박은하
pp.253-254
요즘 같은 세상에 '제대로'란 게 뭐지? 말도 안 되는 저임금에 일만 죽도록 하다가 피로 좀 풀려고 거리에 나가면 이거 사라, 저거 사라. 귀가 따갑다구, 신상품이 발에 채여 괜히 사고 싶은 마음만 들잖아. 그런 꼴 당하기 싫어 어디 가서 좀 쉬려고 둘러보면, 공원 벤치엔 요상한 팔걸이를 만들어서 낮잠도 잘 수 없고, 기차역 대합실이었던 자리에는 어느 새 스타벅스가 들어앉아 있으니. 매일 죽어라 일해서 PDP 사고, 세탁건조기 사고, 돈 모아서 도요타 자동차사고, (물론 대출받아서!) 내 집 사고, 마지막으로 퇴직금 탈탈 털어서 자기가 들어갈 무덤 사고. 그게 바로 제대로 된 '더 나은 생활'이란 말이야.
말하자면... (스펙 잘 쌓아서) 정사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집도 사고 해서 이제는 '우등반'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자네! 우쭐거릴 일이 아닐세. 미안하지만 자네도 이미 각 잡힌 가난뱅이란 말씀이야. 진짜 '우등반'이란 말이지, 잠깐 쉬거나 몇 년 쯤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돈이 굴러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놈들이라구.
-<가난뱅이의 역습>, 10~11쪽
저자 박은하의 주장이 아니라, <가난뱅이의 역습>을 쓴 마쓰모토 하지메의 글이다. 요즘 밖에 나가면 다 돈이다. 돈이 없으면 친구 만나기도 어렵다. 밥이라도 먹을라 치면 다 돈이니 말이다.
내 주변에 뭔가를 사는 것을 즐거워 하는 친구 x명을 내가 이따금씩 '자본주의의 돼지'라고 놀린다. 꽤 기분 나쁜 욕이지만 친구들은 지금까지는 크게 성내지 않고 받아줬다. (언젠가 터질지도?) 전신거울 수납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작년 2월부터 생각해서 지금 14개월 넘게 아직도 고민하며 안 사고 있는 나 같은 놈을 자본주의는 싫어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여윳돈이 차고 넘쳤으면 이미 샀겠지. 친구들을 '자본주의의 돼지'라고 놀렸지만 사실은 나도 돼지가 되고 싶다. 배고픈 소크라테스 따위 누가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나는 배부른 돼지였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배고픈 돼지다. 그래서 불만스럽다. 아마 전신거울 수납장은 몇 년 간은 계속 안 사겠지. 집이 좁아서 안되겠네, 큰 가구가 들어오면 이사갈 때 힘드네 어쩌고 자기 합리화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