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날개의 저자소개를 보면 "이 땅의 건강한 중년이자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균형 잡힌 성의식과 올바른 섹스관 확립을.."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데, 건강하지 않거나 자녀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책을 쓰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씁쓸했다. 마치, 초기의 피임기구들에 대해 '성병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라며 에둘러대던 그 시대의 학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씁쓸함이다. 더욱이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주 중립적으로 균형잡힌 사전은 아니다.
모쪼록 '희'자 이름을 가진 여성을 애인이나 아내로 둔 남자들은 그녀를 왕비처럼 잘 모실 일이다. p.548
등등, 가끔 자신의 의견이 감초처럼 재미있게 들어가있다. 싫진 않지만 '사전'이라는 낱말이 주는 중립적인 느낌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후에 모모사전 하는 책들이 아주 그냥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데, 그 류의 책인 것 같아서 약간 식상하다. 하지만 역사, 생리 현상, 은어, 법학, 섹슈얼리티, 언어학을 넘나드는 이 재미있는 모음집에 사전이라는 말을 안붙이기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 갖다 놓아도 어색하진 않겠지만 화장실류 책보다는 더 재미있는 책! 어렵지도 않으면서 재미있어서 남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다 읽게 해보고 싶은 책이다.
그렇-지만 두둔
1.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풍속에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오다보니 상대적으로 성매매와 관련된 얘기가 많게 느껴진다. (게다가 남자들이 여자에게는 절대 해주지 않는 얘기라는 그 위선이 꽤나 불쾌하다)
2. 성 관련 은어는 예로부터 셀 수 없이 생기고 사라지고 했을 텐데, 분명 시간이 좀 흐른 후, 한 3년만 지나도 지금 나오는 은어를 보면서 무슨 이런 게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의 은어'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매체는 프린트된 책이 아니라는 지적을 하고 싶다. 물론 2011년에 나온 책이니, 2011년인 지금은 재밌다. '콩까다=섹스하다', '콩한접시=100번' 이라는 것 재미있었다.
(청소년의 성 관련 은어에 대한 카페 검색 결과 링크)
3. 성 관련 은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에 쓰이지 않는 것들이 나와서 아리송 했던 것도 있다. '군대송[각주:1]'이라는 것에 대해서 군대 전역한지 얼마 안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다녔는데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 본다는 얘길 들었다. 쳇, 진짜 부르는 노래면 멜로디라도 좀 들어보려고 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재미있는 섹스사전 중 재미있는 부분들을 다 올려 놓고 싶지만, 책의 텍스트를 함부로 올린다고 고소 들어올 것도 같고. 그렇게 내가 다 올려 버리면 스스로 읽는 즐거움이 없을 테니 나에게 재미있었던 부분만, 안 읽으신 분들 약오르시라고 붙임.
고백 신드롬
p.34
불륜을 저지를 남성이 쉽게 고백을 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남자가 바람을 피워 신경정신과를 찾은 위기의 부부 중 80%는 아내가 어림잡아 물어보거나 심지어 묻지 않았는데도 남편이 순순히 고백한 케이스라는 통계가 있다. 알고 보면 남자는 '고백의 동물'이라는 것. 이는 남자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의존성' 때문이다. (후략)
군대 음담패설
p.45
군대에서 유통되는 음담패설로, 여성 비하가 가장 심하기로 악명이 높다. 권김현영은 "군대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하 훨씬 더 심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남성들만 모여 있고 성욕을 풀 곳이 없어서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비하는 군대에서 만들어지는 남성다움의 정의 자체가 여성을 비하하는 정의로 내려지기 때문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대에서 성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할 때는 성기 중심적 성행위만을 묘사하도록 요구된다. 이때 성관계는 주로 '따먹고 따먹히는' 관계로 묘사된다. 이것은 성행위가 남성들에게 정복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페니스는 그 충족을 위한 무기로 인식되어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군대에 간 남성들 사이에서 성행위가 극도로 대상화되는 것에 대해 클라우스 테벨라이트는 남성 군인들이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남자다움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군인들에게 있어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일이므로(감정은 여성스러운 것이므로), 이들은 성관계를 묘사할 때 무기와 폭력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거나(정복/페니스의 무기화), 상대 여자를 살아 있지 않은 대상(여성의 비인격화/대상화)처럼 묘사한다는 것이다."
미망인未亡人
p.152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아니한 아내'라는 남존여비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중략) 의미가 의미인 만큼 이 말은 쓰지 않고 폐기하는 게 좋다.
박진영 누드 사건
p.167
박진영은 1995년 여성 잡지 『이브』의 요청으로 누드 사진을 게재했는데, 재판까지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어느 TV 방송사 9시 뉴스는 박진영의 누드 사진을 비추면서 '성의 상품화'라고 보도했다. (중략) "... 그래서 당신 여성학 강의 들어봤느냐고 물었죠. 물론 하나도 안 들었죠. 그래서 난 연대에서 여성학 강의를 세 과목이나 들었다, 성의 상품화가 뭔지 알고 싶으면 여성학 공부 좀 하고 보도하라고.."
박진영 완전 좋아. 나도 이걸 알았다면 95년에 잡지를 사놓는 건데 쳇. 그때 내가 초등학생이었으니 못샀으려나. 엄마가 사오라고 했다는 척 안될까?
배려 경제 care economy
p.176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터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산업의 경제를 말한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룸살롱과 아이폰의 공통점은 바로 '터치'를 통한 위로" (중략) 아이를 키우는 여자에게 '터치'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정서적 결험인 반면 현대 사회에서 남자에게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거의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금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후략)
비아그라 괴담
p.211
(전략) "... 여섯 시간 동안 안 죽어가지고 있지.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그 다음날 그걸 묶어서 허리띠에다가 연결해 가지고 (중략) '아파 죽겠어, 이 짐승' 이 소리 들어보는 게 소원이라잖아. '니가 인간이야, 짐승!' 이 말에 환장한다는 거지. 편하려고 그냥 소리 질러주는 거야. 빨리 끝내려고. 그럼 남자들은 그게 정말로 그러는 줄 알고 또 고추에다 생명 걸고. 남자들 고추에 목숨 걸고 그러는 거 불쌍해."
사랑의 삼각형 이론
p.219
섹슈얼리티 sexuality
p.255
'섹스'가 보통 생물학적 성의 구별이나 직접적인 성행위를 뜻하는 반면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용어로 '성적인 것 전체'를 가리킨다. 즉 성적 욕망이나 심리, 이데올로기, 제도나 관습에 의해서 규정되는 사회적인 요소들까지 포함한다. 섹슈얼리티는 번역에 어려움이 있다. 함재봉은 "성에 대한 미셸 푸코의 유명한 저서 『성의 역사』도 'History of Sex'가 아닌 'History of Sexuality'이다. 따라서 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섹슈얼리티를 '성성性性'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성'이라는 단어의 어색함이 보여주듯이 '성' 또는 '성성'의 담론은 동양적인 사상과 전통의 맥락에서는 번역조차도 어려운 생소한 개념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성성'이라는 조어는 널리 쓰이진 않고 있으며, 그냥 섹슈얼리티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규현은 푸코의 『성의 역사』를 번역하면서, 섹슈얼리티는 성적 행동, 성적 현상, 성욕 또는 성 본능을 의미할 수 있지만, 성욕이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제목도 사실은 '성적 욕망의 역사'가 옳을 것이나, 이때만큼은 성 현상, 성 행동, 성욕을 모두 통틀어서 대표하는 의미로 '성의 역사'라 하는 것이 기존 언어 관행에도 맞고 제목으로서의 무게와 포괄성 및 매끄러운 수용 가능성(물론 결탁 가능성까지 포함해서)을 지니게 되어 더 나을 것이다." 한편, 일본의 한 연구자는 섹슈얼리티를 "섹스라고 하는 '보편적인 것'이 시대와 사회를 통하여 변화하는 다양한 존재양태"로 정의했다. 김경일은 "이 정의는 섹슈얼리티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나 사회와 같은 문화적 맥락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에 대한 일종의 사회구성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입장은 '섹스는 두 다리 사이에, 섹슈얼리티는 두 귀의 사이에 있다'라는 가장 간명한 정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두 다리 사이에는 성기가 있고, 두 귀 사이에는 대뇌가 있다는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섹슈얼리티는 생리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심리 사회적 현상이고 문화에 의해 학습된다는 것이다.
아우성 논쟁
p.307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을 위하여'의 줄임말로 구성애식 성교육의 핵심 키워드다. 문화평론가 김지룡은 (중략) "... 언뜻 보면 성과 사랑과 결혼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결국에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구성애의 주장은 남성 중심 사회의 가치관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 성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관념을 버리자. 이는 여성에게 순결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 성행위는 사람이 하는 수많은 행위 중의 하나일 뿐이다. 밥을 먹고, 숨을 쉬고, TV를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두뇌 회전을 시키는 다른 행위들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후략)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p.398
"아들만 결혼시켜주면 뭐든 합니다. 죽는 날까지 뼈가 으스러지도록 며느리를 업고 다닐게요." 최부암 상담소장(한국장애인문화협회)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턴가 아들이 "결혼도 할 수 없는데, 여자랑 한 번만 자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얘기.... (중략)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2010년 10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제829호)이 발표한 장애인의 성에 대한 인식과 실태에 관한 보고서다. (중략) 『한겨레21』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조사 과정에서 선정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설문을 거부한 장애인 또는 단체도 있었고, 설문안이 이들의 성욕을 되레 자극한다며 경계하는 시선과도 자주 부딪혔다. 고작 2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작업만 두 달 넘게 걸린 이유며, 감히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라 이른 까닭이다. 더 정밀하고 폭넓은 조사는 이제 국가의 이름으로 이뤄져야 한다.
장애인의 성생활에 대한 조사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 지면 어떨까. 비장애인에 대한 성조사는 과연 국가 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실태가 궁금하기는 하다.
테크노니미 technonymy
p.473
자녀 본위 호칭법을 말한다. 환태평양 연안의 민족과 종족에서 보이며, 아이(철수)를 낳으면 아이를 본위로 아내는 철수 엄마, 남편은 철수 아버지 하는 식으로 부르는 호칭 관습이다. 이러한 호칭법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가사만을 담당하는 여성의 정체성이 지역이나 토지(외서댁, 화순댁 등)에서 남편으로, 남편에서 다시 자녀에게로 종속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남자)들이 있다. 다른 나라는 결혼하면 여자의 성이 바뀌는 데 우리나라는 여자도 자신의 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꽤나 양성평등적이라는 것이다. 지랄맞은 소리 같으니라고 웃음 밖에 안나온다. 여자들의 성이 유지되었던 것은 그 받은 성이 아버지로 부터 받은 것이기에 바꾸지 않았던 것이고, 자아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이름은 없었다.
보쌈(p.190), 보지 데고 투가리 깨고 매 맞고(p.192), 빼도 박도 못하다 (p.214), 성 고문(p.233), 포르노의 역설(p.503), 하루밤 자고 만리장성 쌓기(p.518)
이건 정말, 서점에 서서라도 꼭 스스로 읽어 보기를 추천함.
김지애, '얄미운 사람'을 개사시킨 군대송 : " 길가는 여대생을 붙잡아놓고/한 번만 더 합시다/아니 됩니다/만약에 애 새끼가 배는 날이면/당신은 별 볼 일 없는 군바리고요/나는야 무책임한 여대생이라/야야야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