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는 가정이 무의미하다. 만약 이러했으면 어땠을까를 아무리 상상한다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사건이 변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처럼 사람들은 지나간 역사를 상상하며 문화를 만들어 낸다. 영화 <람보>는 미국의 첫 패배인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문화적 구성물이다. 미국인들의 드높은 자존심에 난 첫 번째 상처, 그 첫 번째 피에 대한 그들의 회상은 피하고 싶은 기억을 조심스럽게 들춰 보다가 역사적 진실에 가필을 덧씌운다. 베트남전을 통해 잃어버린 남성성을 되찾고, 전쟁에 진 이유를 국가가 아닌 무능한 정부에게서 찾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베트콩을 개미떼 눌러 버리듯이 잡아 죽였는가를 상상한다.
말이 되냐 솔직히
전쟁에서 지고 돌아온 영웅을 추모하기 위한 상황극이 비록 제3자를 당혹스럽게 할지라도 그들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들의 속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자. <람보> 1편의 람보와 경찰의 관계를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라고 본다면 어떨까.
자연의 산물을 이용할 줄 알고, 게릴라전에 능하면서,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을 뿐, 동지이자 가족에 대한 신뢰를 잊지 않는 것-은 람보인가 베트남인인가.
기계문명을 신뢰해 닥치는 대로 총을 쏘고, 자신의 동료가 죽은 것에 분노해 복수를 시도하고, 무장한 수많은 사람들을 숲 속에 투입했지만 한 명의 게릴라에게도 패배하는 것-은 경찰들인가 미국인인가.
"I didn't do anything"라는 말에도 소리를 지르며 총을 쏘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자 떠돌이이고, 약자로 보였던 람보가 경찰들을 치고 달아나 싸우는 모습을 보며 미국인들은 마냥 유쾌하게 즐거워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까지 이어져온 역사들은 이긴 자들의 역사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는 패배했지만 ‘실제로는 패배한 것이 아닌 셈’이라는 기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것처럼 잊어버릴 것인지, 허구의 구성물이 진실로 받아들여져 기억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렵다. 후세의 사람들은 베트남전에서의 승리를 노래하는 영화들과 베트남전에서의 패배를 기록한 공문서 사이에서 고개를 내저을지도 모른다.
참고논문 : 박진임. 베트남에서 잃어버린 미국의 남성성과 자존심을 찾아서 : 람보. 2002. 문학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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