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는즐거움

[연극] 개는 맹수다

by Desmios 2011. 9. 29.

  서울러는 오페라, 전시회, 콘서트, 박람회, 연극, 페스티벌, 뮤지컬 등등등 손 쉽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세련된 도시인의 삶을 살 줄 알았다. 알고보니 박물관은 커녕 서울숲 노루(인가 사슴인가)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 : 문화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건 시골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이 촌년의 환상을 짓밟다니!
  그러나 얼마전 고향에 갔을 때, 고등학생인 동네 동생이 "언니, 서울에 살면 연예인 자주봐?" 하길래 대답할 말이 곤궁했던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 시골 사람들의 환상을 채워 줄 만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보다.


  그래서 인 것은 아니지만 연극을 보러 갔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인디스튼가 뭔가 구린 네이밍의 봉사활동을 하고 온 친구가 극찬했던 바로 그 공연을 두산 아트센터에서 다시 공연을 올렸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독후감 링크)을 보하게 고 난 후, 그 쇼끼의 찌질한 냄새에 질려버렸다. 그러나 유다X예수 동인지 그 자체라는 직소에 대한 예찬을 고등학교 때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꿈꿈한 스토커의 독백을 예상하고 파란 불빛이 떨어지는 빈 의자에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세명의 배우가 유연하게 역할을 바꿔가며 무대를 채워갔다. 의자는 사람이 되고 벽이되고 문이되고 예수가 되었다가 오키가 되었지만 친구가 '한예종 출신들은 왜 이리 의자를 좋아하는거야'라고 말하자 다시 의자가 되어버렸다. 다만, 한예종 출신들이 사랑하는-의자 놀이의-의자 라는 설명이 붙은 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오사무도 새 이름을 얻었다. 리플렛 연출의 말에 써있는 대로, 자기 비판 속에 깔려 있는 순수를 알아 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비열함에 대한 혐오 만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미안함 섞인 실없는 따스함이 배우의 몸을 통해 다가왔다.
  연극의 대 제목이기도 한 <개는 맹수다>에 해당하는 <축견담>에서 포치가 붉은 깡패개와 싸울 때, 나는 포치가 질까봐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포-챠- 힘내! 목에서 둥글게 어깨까지 내려오는 선의 포치역 배우가 숨을 헐떡이며 주인 앞에 섰을 때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눈에 살짝 웃음을 준 채 입을 다물고 입꼬리 만을 사용하는 웃음)를 지어 보였다. 
  이다(친구)의 완전 소중한 <직소>에서는 의자가 아주 많-이 나왔다. 뒷자리에, 자기가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왼발 셋째와 넷째 발가락 사이가 간지러워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는, 장애우 여자가 두번이나 '발, 삽십데나리온'이라고 지껄이는 바람에 집중이 깨져서 좀 많이 짜증났지만 나는 그럭저럭 배우들이 눈물을 그렁일 때에 맞춰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궁금해져서 아버지(목사)에게 예수의 열두제자가 전부 누구누구냐고 물어보았지만 아버지는 나다니엘이 제자 아니었냐고 어머니와 논쟁하며 열 손가락을 다 꼽지 못했다. 유대인들은 같은 이름을 너무 많이 써서 싫어. 요한이랑 마리아만 해도 셀 수가 없다 빌어먹을.

  어디서 또 공연을 한다면 (알고보니 10월 14, 15에 두산 아트센터에서 한 번 더 한다더라) <축견담>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배우 양조아의 맛깔스런 포-챠- 소리를 들으러 가야지.

개는 맹수다 공연 정보 링크
개는 맹수다 공연 안내 : 네이버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