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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이지적 성

무라카미 류 - 남자는 소모품이다

by Desmios 2009. 4. 13.
남자는 소모품이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무라카미 류 (친구미디어,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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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가 '옮긴이의 말' '역자(서문)'을 책 앞 쪽에 집어 넣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뒤쪽에 있으면 사람들이 하도 안 읽고 독후감 쓰는 아해들만 기웃거리는 게 억울해서 앞으로 왔나. 하고나서 매번 후회하고도 잊어버리고 똑같은 짓을 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책속에 포함된 다른 사람이 쓴 '옮긴이의 말' 따위를 읽는 것이다. 읽는 것 자체로는 아무 상관 없는 문제이지만 내가 생각한 '나의 감상'을 다 쓰기 전에 다른 사람이 쓴, 무려 해당 책에 실리기 까지 한, 서평을 읽어 버리면 나도 모르게 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향을 받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고 읽어도 영향을 받아서 그 책을 한 번 더 그런 시각으로 보게 된다. 딱히 '영향을 받지 말아야지'하고 읽지 않더라도, 왠지 책에 글씨가 있고 하니까 '책 한권을 다 보려면' 그것 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매번 후회하면서도 또 그것을 읽어 버렸다.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책의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이 책이 형편없는 것은 자신만만한 말투 속에 언제나 도망칠 구멍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식의 화법을 눈치채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 책을 칭찬하고 성서화하는 것일 게다.  .... 지성을 지니지 않고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자가 훌륭하다니, 그런 여자야 그저 우리가 바보라고 부르는 종류의 여자 아닐까. 무라카미 류는 참으로 의미 없는 말들 속에 읽는 사람을 지쳐 나자빠지게 하는 의미를 담는 일에 있어서 천재적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혹시 허풍쟁이라고 하는 거 아니었나?

  무려 '아쿠다가와상 최연소 수상 작가인 무라카미 류와 아주 비슷한 경력을 지닌 나오키상 최연소 수상 작가인' 야마다 에이미'의 비판을 덧붙여 놓다니 나보고 지금 생각하라는 것인지 생각당하라는 것인지 참 어렵다.

  아마도 에세이 집의 내용이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니 미리 초를 좀 쳐놓자는 의도였을 것 같은데, 덕.분.에, 나는 '이 사람 완전 웃긴데!'라고 유쾌하게 생각하다가 확 찬물을 맞아 버렸다. 도망칠 구멍이라는 둥, 어리석은 인간들이 이 책을 칭찬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면 괜히 내가 그 '어리석은 인간'인 것 처럼 생각되지 않겠는가. 나오키 상을 타신 분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보니 왠지 그런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뭐 그렇다고 야마다 에이미가 이런 글을 쓴 것이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이런 권위 잔뜩 묻은 글을 본문, 심지어는 차례 전에 떡하고 실어 놓은 것이 무슨 악당 같은 짓인가 하는 불만의 토로다.  
 

  그랬던 것만 제외하면 나는 이 책이 꽤나 즐거웠다. 물론 무라카미 류가 좀 어이 없는 소리를 지껄이기도 하고 페미니즘 적으로 까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개나소나 한번씩 찔러 볼 수 있을 만큼 찌를 구멍이 많긴 하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례들이 얼마나 웃긴지!

내 친구 하나가 눈 수술을 했다. 안구 수술이었다. 수술 후 얼마 동안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서는 안 된다고 의사가 다짐을 주었다.
우리는 신주쿠 역의 동쪽 출구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부키 거리 안쪽에 있는 술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친구가 갑자기 손으로 눈을 덮더니 주저앉았다.
풍속 영업법이 시행되기 전의 가부키 거리에서의 일이었다. 젊은 여자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손님을 끌고 있고 실물 크기의 누드 사진으로 장식된 요지경 상자 방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는 터라 그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만 것이다.

  나는 이 일화를 처음 읽고선 마구 웃고, 한 세 번 정도 더 읽었고. 군대 간 친구에게 전화가 왔을 때는 마침 그 부분을 읽은 지 얼마 안된 고로 소리내서 이 일화를 읽어주었고, 남자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여자친구에게도 보여주었다. (저 두 남자는 내가 좋아 한 만큼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3년 전이었던가, 나는 뉴욕의 맨해튼 42번지에 간 적이 있다. 그 곳은 브로드웨이의 포르노 거리였다.
거기서 나는 라이브 쇼를 봤다. 그것은 너무나도 음울한 느낌을 주는 쇼였다. 관객은 나와 내 친구 한 사람뿐이었다. 멕시코인 남녀 한 쌍, 흑인 남자와 필리핀 여자로 이루어진 한 쌍이 단 두명의 관객을 상대로 연기를 펼쳤다.
두 번째 쌍의 공연이 끝나 돌아가려고 하는데 앞서 연기했던 한 쌍이 다시 무대로 나오는 것이었다. 라이브 쇼에서 남자는 반드시 여자의 몸 밖에서 사정을 한다. 남자가 사정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우리는 어, 또 하려나? 하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반쯤밖에 서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죽어라고 끝까지 다시 했다.
나는 슬픈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남자에게 팁으로 10달러를 주며 "이건 너한테 주는 거야. 절대로 여자하고 나눠 갖지 마. 이걸로 영양가 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구."하고 말했다. 

  조금 주의 해야 할 것은 마광수 에세이집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도 그렇고 무라카미 류 같이 소위 성적 자유분방함 때문에 정 맞은 사람들은, 자신이 엄청나게 시대를 앞서 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못알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그들은, '여하튼 내가 옳기도 하고 내 취향은 잘난 취향이니까 너 우민들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룹섹스가 좋든지, 애널섹스가 좋든지, 드럭섹스를 해봤던지, 골빈 여자가 좋든지, 야한 여자가 좋든지 간에 그 건 네 성 취향이지 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머어머 하고 읽어 버리면 그 것이야 말로 저자 들이 원하는 바:나는 굉장히 대단한 사람임을 모두에게 알게 한다,를 이루어 주는 것이다.(다른 말로는 떡밥을 꿀꺽 삼킨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낄낄낄낄낄 충분히 낄낄 거리며 읽을 수 있는 것은 무라카미 류가 독설가이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뒷 자리라서 잘 안보이는데 어떤 머리 큰 아줌마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게다가 파마까지 했다) 있는 짜증나는 상황에서 누군가 '어이 아줌마! 좀 앉아요!'라고 소리지를 때 속이 시원해 지는 것과 비슷하다.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김구라씬가 누군가가 인터넷에서 아무나 마구 깠을 때 사람들이 좋다고 박수를 쳐준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군가 대신해서 질펀하게 독설을 뿜어주면 괜히 나와 관계된 사람도 아닌데 속이 시원해 지는 것이다.

    150페이지
아, 그런 부류들 이야기를 쓰려니까 왠지 속이 메스꺼워진다.
예를 들면 타케시다 테츠야가 바로 전형적인 그런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근본이 아줌마이기 때문에 사카모토 류바 같은 인간을 동경하는 것이다. 
됐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의 험담은 이쯤에서 그만두자. 입이 썩겠다.

  그 이상의 가치는 그다지 없다. 와 재밌었다 하고 읽고 다음 책을 집으면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