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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_진/花無十日紅

봉선화 물들이던 날

by Desmios 2008. 11. 9.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래서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고 간 남자는, 남자친구들에게서는 그런 이야기를 못듣지만 여자 친구들에게서는 들을 수 있다.

 봉선화를 물들인 손톱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그래서 남자친구들이 그의 손톱을 보면 '남자 새끼가 그게 뭐냐' 라는 소리를 듣고 여자친구들이 그의 손톱을 보면 '첫사랑 이루어 지라고?'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가 낭만적인 성격인가 아닌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나 자신의, 봉선화와 손톱 물들이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뿐이다.

 나는 손톱이 예쁘거나 손이 예쁜 것도 아니라서 길러서 남 보여줄 생각도 없고, 애초에 그런 미학적인 이유보다는 그저 나는 손톱을 길게 기르면, 컴퓨터 타자를 치기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재미 없는 이유에서 손톱은 짧게 자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봉선화를 물들인 손톱은 첫눈이 오기 전에 벌써 잘게 가닥나 자연으로 돌아갔다.
 발톱에도 물을 들인 어느해 큰 창문 밖으로 첫눈이 내리고 있고, 나는 양말을 벗고 아직 빨간 봉선화 물이 남아 있는 내 발톱을 물끄러미 내려다 본 기억이 있다. (발톱은 손톱보다 늦게 자라는 편이니까) 첫사랑 이루어 진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인지, 사귀는 것인지, 마음이 통하는 것인지, 결혼을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무언가 실망했고 그 뒤로는 봉선화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을 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톱은 자란다.
  그는 길게 기른 엄지 손톱을 네 손가락 안으로 집어 넣고 주먹을 쥐고 다닌다.

  올해에는 발톱에도 봉선화 물을 들였다. 
  우리는 첫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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