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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이반 일리치의 죽음 041120

by Desmios 2011. 7. 20.
이반 일리치의 죽음 - 10점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나는 책을 읽을 때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 글은 쓰레기야.'

톨스토이는 나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내 글은 정말 쓰레기야. 내가 뭔가를 쓴다는 것이 꼭 죄를 짖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톨스토이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어린이 세계문학 전집에 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톨스토이를 우습게 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톨스토이에게 사과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을 떠올린 것을, 이런 작품에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을 사과한다. 아무나 '문학의 거봉' 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눈물을 흘리도록 분하다. 나에게 글 쓰는 것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이, 굳이 천부적이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글쓰는 재능이 없다. '재능'이 없다. 그 뿐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제목 그대로 이반 일리치 골로빈이 죽어가는 이야기이다. 간인지 맹장인지 하는 것으로 고통을 받아 죽어가며 그는 과거를 곱씹는다. 그리고 그 과거에, 현재에, 죽어가는 미래에 분노하고 증오하고 체념한다.

  톨스토이는 죽어가는 이를 오래도록 관찰한 적이 있었을까? 시체를 봤을까? 너무나 절절하고 섬세하고 진지하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써내는 그의 잔혹한 펜. 그 자신의 죽음은 어땠을지 궁금해 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반 일리치가 죽은 후의 일로 시작한다. 이름이 너무 어렵다. 도무지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르트 이바노비치가 뭐가 다르다는 거야! 욕나오게 어려운 이름. 그것 때문인지, 책에 완전히 집중을 못해서 인지 처음 부분은 지리하고 이해도 안됐다. 그리고, 그의 과거사가 나온다. 남들이 보기에 성공한 인생이었던 재판관으로서의 역겨운 삶. 가식과 거짓으로 점철된 그의 평범하게 화려한 삶이 나온다. 권력, 돈,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또 많은 것들을 바보 취급하며 산 그의 삶을 나는 구역질 내면서도 동정한다.
  이제, 그는 죽어가기 시작한다. 이문열의 작품해설에 나오는 대로 부인(아닐 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과 분개(왜 하필 나인가), 타협 혹은 거래(할 수 없지, 그렇구나), 친화(이러이러한 이유로 죽음이 빨리왔으면,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는 기꺼이 죽음을 껴안을 수 있다)의 단계들을 거치며 이반 일리치는 죽어간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하인인 게라심에게 이반 일리치가 돌리는 신뢰와 그에게 느끼는 위안이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기만을 게라심에게서 느낄 수 없었고, 이반 일리치가 원하는 만큼 게라심은 그를 동정했기에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에게서 편안함을 느낀 것이다.

  이런 거짓말은 제쳐놓고, 이반 일리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아무도 그가 원하는 만큼 그를 동정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의 뻔한 거짓말 때문에 그것이 더욱 괴로웠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뒤에는 더더욱 동정을 받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심정을 고백하기는 부끄러웠다). 아픈 아이를 불쌍히 여기듯, 누군가가 나를 토닥여 주고 달래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다정한 애무와 위로를 갈망했다. 그는 자기가 주요한 관리이고, 턱수염이 희끗희끗해진 중년의 사내이고, 따라서 아픈 어린애처럼 취급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것을 갈망했다. 그런데 그를 대한 게라심의 태도 속에는 그가 원하는 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게라심의 태도는 그에게 위안을 주었다. 이반 일리치는 울고 싶었다. 다정한 애무를 받으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런데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면, 이반 일리치는 흐느껴 울고 애무를 받는 대신에 진지하고 엄격하고 심오한 태도를 취하곤 했다. 그리고 오로지 습관의 힘으로 재판소 판결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그런 자신의 견해를 완강히 고집하곤 했다. 주위 사람들과 자신의 이런 허위가 그의 마지막 날들을 다른 무엇보다도 심하게 해쳤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 더욱 더 이반 일리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껍질 속에 감추고, 혹은 껍질과 내가 하나가 되어 나 자신조차도 나와 가식을 구분 할 수 없게 되는 형태의 나를 배웠다. 뭔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두가 그런 것처럼 나도 그들과 같이 가면을 몇 겹이나 쓰고 쓴 '어른'이 될 것이다.


그는 죽는다.
 
그는 숨을 들이키다가, 깊은 호흡 중에 갑자기 멈추고, 몸을 쭉 뻗었다. 그리고 죽었다.

나도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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