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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파스칼 메르시어 - 레아

by Desmios 2011. 7. 19.

레아 - 8점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상상공방(동양문고)

  딸을 둔 아빠에게는 잔인한 소설이 될 수 있으니, 아빠와 친한 딸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책 머리부터 독자는 딸인 레아의 추락을 냄새 맡을 수 있고, 줄과 줄 사이를 아버지인 마틴 반 블리에트와 함께 걸으며 천천히 이야기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미 레아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야기를 시시하게 만들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 대한 진한 동정을 느끼게 될 뿐이다.

  아버지들의 눈에 딸이 얼마나 예쁠까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도 닮았으면서 자기 자신과도 닮았으니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아버지는, 자신이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생각을 내가 말했을 때 깜짝 놀랐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더이상 아빠의 조언이 필요 없다는 듯이 무시하는 나를 보며 또 실망하셨다고 한다.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고, 태어나는 것 부터 지켜봐왔던 존재가 자신의 손을 떠나려하는 그런 심정은 아마 겪어본 사람 만이 알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철저한 이성주의자이고, 나는 완벽주의에 빠진 천재 예술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성만만세의 아버지를 많이 닮았지만, 내가 파멸한다면 아버지가 과연 지금과 같이 평정심을 유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더는 못쓰겠다. 결말을 알면서도 끝까지 읽어버린 나 때문에 그가 그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자꾸 들기 때문이다. 마음이 먹먹해져서 한참 책을 안고 있다가 저녁 산책을 나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세 번이나 무거운 소리를 내며 벌레가 내 귀를 지나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지는 시간의 새벽하늘 같던 내 마음이 단숨에 무서움과 쪽팔림으로 범벅되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