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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조경란 - 백화점

by Desmios 2011. 12. 29.
백화점 - 6점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톨

  나는 백화점에는 잘 가지 않는 편이다. 아마, 우리 집이 백화점에 가는 집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어린 20대 초중반의 여자들도 가지고 다니는 소노비(이렇게 읽는 건 맞나? 맞군 sonovi) 가방이 엄마가 가진 유일한 사치품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와 동생이 입고 질려 던져둔 잠바나 어디서 들어온지 알 수 없는 무료 티셔츠를 구멍이 날 때까지 입고 다니신다. 그 것은 이제 우리집 사정이 좀 피고 자시고를 떠나서 그런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선뜻 새 옷을 입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나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명명백백 백화점은 나의 장소가 아니다. 나는 1층 지갑 매장 직원들이 제품을 보여 줄 때 벨벳 장갑을 깬다는 것도, 백화점 옥상에는 정원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도무지 옷을 사러가면서 옷을 차려입는 습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에 지갑을 새로 사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인터넷이며 친구들, 여자후배들에게 물어보다가 백화점에 한 번 가보라는 얘길 듣고 내 취향의 지갑이 있을까 싶어서 한 번 기웃 거려보았다. 용산 아이파크몰을 나오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없다는 것이 실망스러우면서도 (기성품이란 흥) 동시에 안심이 되는 듯 했다. 나에게 있어 사치와 허영의 대명사인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다는 것이 값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엄마 옷을 몰래 입어 본 것 마냥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마음을 감추질 못하겠다. 벨벳 장갑을 끼며 나를 올려다 보는 직원의 시선이 마냥 불편했던 것 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저 알맞은 번명거리를 찾고 있는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의 허황된 소비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저런 소비니 명품이니 가치니 하는 논리를 끌어 오고 싶을 뿐일지도. 우스꽝 스럽다고 생각했던 발 토시를 샀을 때 처럼, 스키니 진에 굴복 했을 때 처럼 나는 남들이 다 산 뒤에 서야 느즈막하게 소비 추세에 슬쩍 따라간다. 나는 유행에 대한, 남들과의 동일시와 자존감 사이에서 나를 잃고 헤매는 중일지 모른다.

이, 소비 시대에 말이다.


 + 덧
  결국 몰래 마음에 담아 두었던 비비안웨스트우드 지갑은 나중에 돈 벌면 사기로 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할인 카드가 그렇게 많이 들어 갈 수 있을 줄 몰랐던 비-스마트폰 유저는 머니클립을 살 걸 하고 후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