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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마거릿 미첼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by Desmios 2014. 7. 8.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상 - 10점
마가렛 미첼 지음, 송관식 옮김/범우사


  다시 읽고 싶어진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차마 세 권짜리의 긴 장편소설을 읽을 짬이 안나서 미루던 것이 몇 년 되었다. 요즘 나의 애용도서관인 염리동 주민센터 2층은 누군가 기부한 장미의 이름 상 권이 하 권 없이 홀로 꽂혀있는 수준이지만, 작은 규모이니 만큼 귀엽고 약간 두서없는 분류들 사이에 재미있는 책을 찾는 보람이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빌리려 그랬더니 1987년도에 출판된 금성출판사의 세 권짜리 책을 찾아 주시더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책이 이리 깨끗하다니 한 세명이나 읽었을까?) 사서형은 오래된 책인데요, 하면서 이 책을 내밀었지만 1936년에 출판된, 1860년대에대한 내용을, 1987년 어투로 읽는 것은 꽤 어울리는 일인 듯 했다. 세월이 바뀌면 번역도 다시 되어야 한다고 한 말이 어느 책 역자의 말이었는지, 찾아보려고 해도 온통 성경 번역에 대한 글만 나오니 알 수는 없지만, 2014년에는 쓰지 않는 어투를 사용하는 스칼렛 오하라를 읽으며 남부의 귀부인이라면 저런 말투를 썼을거야! 라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스칼렛의 연애사에 관한 독후감은 충분이 있으니 나는 다른 것에 대해 써볼까 한다. 1 스칼렛의, 애슐리에 대한 오해와 이해, 2 복식은 바뀌었으나 바뀌지 않는 사고 총 두 가지다.


1 오해와 이해


  생각을 뗴쳐 버리려고 해도 소용없었고, 자신을 달래 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하지만 난 그를 사랑해. 난 수년간 그를 사랑했어. 사랑은 그렇게 순식간에 식는 게 아니야.>

  그러나 사랑은 변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변했던 것이다.

  <그는 실제로 존재해 있었던 게 아니고, 내 환상 속에서만 살아 있었을 뿐이야.> 그녀는 지쳐서 생각했다.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을 사랑했던 거야. 바로 멜리처럼 죽은 것을 사랑해 왔어. 나는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놓고서 사랑에 빠져 버렸던 거야. 그리고 애쉴리가 말을 타고 왔을 때엔 너무나 근사하고 너무나 독특해 보여서, 그 옷이 그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에게 입혀 버렸던 거야. 그리고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었던 거야. 나는 이제까지 그 아름다운 옷만을 사랑해 온거야……그리고 내가 사랑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었어.>

3권, p.410 스칼렛의 생각


  스칼렛은 멜리가 죽기 전까지도 내내 자신이 애쉴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가, 레트가 아무리 친절한 말로 스칼렛은 애쉴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줘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당신 마음을 나에게 말해줘요. 그렇다면 내가 다 이해할게요. 내가 바꿔볼게요.' 그러나 실제로 말해줘도 '아 뭔 개소리야. 듣기 싫어. 뭐라는거야.' 이게 다다. 어렸을 때는 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왜 말해줘도 말귀를 못알아 듣나 생각했지만 실제로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다. 너무나 현실적인 사람, 현실 이외에는 가치를 두질 못하는 사람, 꿈꾸는 이상과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같은 이야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세 번은 더 쉬운말로 바꿔서 말해주지 않으면 못알아 듣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스칼렛은 쉬운말로 바꿔서 알려주려고 해도 고집이 세서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남부 신사들은 현실적인 말로 바꿔서 스칼렛에게 현실을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고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오해를 이해할 때면 항상 너무 늦었다. 아버지가 말한 "영원한 것은 땅 밖에 없다"를 이해했을 때는 땅을 잃어버릴 때 즘, 프랭크의 대의와 용기를 이해했을 때는 프랭크가 죽은 다음, 애쉴리에 대한 자신의 환상을 알아차렸을 때는 그가 완전히 망가진 다음, 레트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레트의 사랑은 식은 후였다. 


  우리라고 다를바 있을까. 내가 지은 옷을 타인에게 입혀 놓고 그 옷을 사랑해본 경험은 종종 있다. 연인 뿐만 아니라, 선생님에게, 부모님에게, 내 동생에게, 내 친구에게 환상의 옷을 입혀 놓고 그들이 그 옷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눈치 챌라 치면 그런 점을 무시해버리고 옷을 유지하거나, 옷이 아니라 옷이 맞지 않는 그 사람에 대해 크게 실망해 버린다. 대상으로서는 억울하기 그지 없는 일이겠지만 그 사람도 다른 사람에 대해 옷을 지어 본적이 없을리가 없다.

  스칼렛의 오해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가 저지르는 말도 안되는 바보짓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는 혹은 해봤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칼렛 오하라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용기를 마음에 지녔기 때문이다. 



2 복식과 사고




  이것은 바람과함께 사라지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으로 혹시 영화나 소설을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862년 미국 남북전쟁 중 병원 모금을 위해 바자(회)를 개최하였는데 스칼렛이 레트와 함께 릴 춤의 리드를 맡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옷이 화려한 것에 비해 스칼렛이 칙칙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은 그의 남편이 전쟁(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도)중 사망하여 상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미망인이 상복을 입기 시작한지 1년도 안되어서 이런 사교모임에 나오는 것은 더욱이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은 경원시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스칼렛을 어떻게 보고 자시고, 상복이 목까지 오고 베일을 입어야 하는 둥 어쩐 둥 뭐 이런 저런 점들이 있긴 하지만 단순하게 저 복장을 보자. 요즘 미국 조지아에서도 저런 복장을 입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건 어떨까?


「아가씨가 파티에서 뭇 사람들로 부터 예의범절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을 전 참을 수가 없어요. 귀부인이란 새처럼 조금밖에 먹지 않는 것이라고,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나요. 전 아가씨가 윌크스 나리 댁에 가셔서, 들에서 일하는 노예처럼 게걸스럽게 잡숫게 하고 싶지는 않다구요.」

1권, p.102. 매미의 말


「아, 결혼을 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녀는 원망스러운 듯이 고구마를 쿡쿡 찔러 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이런 어색한 짓을 하며, 하고 싶은 걸 하나도 못하고 지내야만 하나. 정말 지겨워. 마치 새만큼도 못 먹는 것처럼 꾸며야 하고, 달리고 싶을 때에도 얌전하게 걷지 않으면 안되고, 앞으로 이틀 동안은 계속 춤을 춰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으면서도, 왈츠를 추고 나서는 그만 지쳐서 정신을 잃을 것 같다고 엄살을 떨지 않으면 안되고, 정말이지 이젠 지긋지긋 하다구. 그리고 내 반만큼도 똑똑하지 못한 사내에게 '어마, 당신은 얼마나 멋진지 몰라요.' 하면서 아양을 떨어야만 하고, 사내가 시시한 일을 자랑스러운 듯이 지껄이는 것도 모르는 척하고 들어 줘야하고,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니까」

1권, p.105 스칼렛의 말


  우리 시대에는 귀부인도 들에서 일하는 노예도 없고, 왈츠를 추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여자들이 가장해야 하는 모습에는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소개팅 자리에 가서 시킨 음식을 반 이상 남기며 못 먹는 체를 하거나 (사실 이건 진짠지 모르겠고, 들은 이야기인데 소개팅을 해본적이 없어서 정말로 여자들이 소개팅에서 일부러 음식을 남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자를 추켜세우며 아양을 떨고 시시한 일도 지극히 관심있다는 투로 들어주거나,  어머 더이상은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간간히 약한체를 하는 것 말이다.  그 외에도 여자들은 셈에 밝지 못하거나, 밖으로 나돌지 말고 집에 있어야 한다, 아이를 가지면 달라질 것이라는 둥 참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 것들이 모두 틀리며, 세상의 여자들과 여자들을 보는 시선들은 모두 달라졌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인즉슨, 치마가 아무리 짧아지고, 사람들이 머리 염색을 하고, 상복에 베일을 1년은 두르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고 사람들이 여자에게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선, 여자들이 스스로에게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기절제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영상은 1860년대를 재현하고 있다. 1860년대라니! 나는 셈이 느려서 2014년에서 몇 년이나 더 전 시대인지 암산도 안된다.

  복식은 정말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아주 천천히 변한다. 복식만큼 사람들의 사고도 휙휙 바껴야 한다거나, 어떠한 사고 방식이 더 올바르고 여성친화적이며 모든 인류가 지향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변하는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거나, 자뭇 위험한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