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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김려령 - 가시고백

by Desmios 2014. 7. 16.
가시고백 - 6점
김려령 지음/비룡소


  가시고기도 아니고 가시고백은 뭐지? 국어논술선생을하고 있는 애인이 이번 교재라며 책을 빌렸을 때 생각했다. 수업준비 힘들다며 투덜투덜하다가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생각보다 재밌다며 싹싹 읽어 나가는 게 '재미있는 우리 국악 이야기'보다 훨씬 나았는가 보다. 


  나쁜 얘기부터 하자면, 어른이 쓴 청소년 일화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너무 성숙한, 속깊은 아이들이 등장하고 적당히 나쁘다기 보단 적당히 평범하게 나쁜 아이, 마찬가지로 성숙하고 속깊어 학교에서 쉽게 알아보기 힘든 좋은 선생님. 문제있는 듯 하면서도 따뜻한 가족과 부모, 꽁기꽁기 따끈따끈.


p.111

  담임은 연구실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고구마 줄기와 병아리, 그리고 백숙……. 이 소박하고 따뜻한 말들을 열여덟살 남학생에게 들었다. 고등학생의 뇌는 무조건 대학으로만 채워야 할 것처럼 세상이 떠들어 대는 바람에, 본인들도 그래야 하는지 알고 0.1점마저 절박해한다. 대학을 통과하지 않으면 추레한 인생이 될 거라는 무언의 협박에, 점수와 동떨어진 세계를 탐색하는 아이들은 죄라도진 것처럼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유정란에서 병아리를 부화시키고, 학원도 빠지고 병아리를 보러가는 네 명의 친구들이라. 고등학생의 뇌는 모의고사와 대학, 내신으로만 꽉차있는 게 아닌가? 어딘가에는, 사실 어딘가에는 이렇게 사람 숨통을 트이게 하는 따뜻한 말을 지껄이는 고등학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은' 어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다. 아니면 꿈을 꾸는 게 일인, 꿈을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고등학생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의고사만 꿈꾸는 고등학생에 대해 쓰기는 너무 재미 없을 테니까.


  나는 그런 학생이었나? 내 친구들은 그런 학생이었나를 떠올려 보기엔 시간이 좀 많이 지났고 요즘 애들 중에서도 이런 학생이 있을까 생각해보기엔 학생들에게서 내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책에 나오는 것처럼 속깊은 얘기를 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선생님이 있다. 

  벼슬이라도 하는 듯 온갖 산해진미와 편안한 잠자리, 최신형 전자기기를 요구하는 그 이름도 위풍당당한 고3 때의 담임선생님이다. 





  사진을 좀 설명하자면,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나름 자율적인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하고 있었다. 말인즉슨 야자를 안하겠다고 하는 아이들은 학원을 가거나 예체능계를 지원하는 아이들이었고, 나와 친구들은 '모학교는 시험기간에는 밤새도록 공부하게 해준다는데 왜 우리는 집에 가라고 하냐고' 투덜투덜 거리는 정도였다. 말인즉슨 다들 뇌가 무조건 대학으로 차있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담임선생님은 야자시간에 교실의 빈자리에 앉아서 수업준비를 하시기도 하고 잠깐 주무시기도 하셨는데, 기본으로 주어지던 두타임의 야자 시간을 마치고, 집에 가지 않고 한타임을 더 하던 몇명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포스트잍에 짧은 편지를 써주셨다. 

  우리야 서로 낄낄 거리며 네 편지에는 작은 산 이야기가 없네, 너는 산 못 넘네 하며 웃었지만 사실 나는 많이 감동받았다. 


  선생님은 한명한명 교무실에 가 진로 상담을 할 때, 자취생은 잘 먹어여 한다며 나에게 선생님용 간식을 나눠주시기도 했고 학생의 날에 반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주시기도 했고, 내가 학교에서의 어떤 사건으로 크게 실망했을 때 조용조용 내 이상에 공감하고 격려해주시기도 했다. 가시고백에서의 속 깊은 용창담임선생은 나에게 선생님을 떠올리게 했다. 


  만나기가 그리고 알아보기가 어렵다 뿐이지 세상 어딘가에는 이렇게 따뜻한 선생님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따뜻한 학생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그렇게 믿고 싶은지 혹은 세상이 그렇게 믿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약간 찜찜한 기분이 남긴 하지만 세상에 이런 학생들이 많고, 이런 학생들이 많아 지게 해주는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다들 마음에 가시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