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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이영도 - 그림자 자국 0903

by Desmios 2009. 3. 9.
그림자 자국 - 8점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영도씨의 작품을 모두 좋아하고, 또한 그림자 자국 역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평을 먼저 쓰는 것은 내 글의 마지막쯤에 혹평을 달아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마지막의 혹평만 기억할 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혹평을 보고 그 다음 호평을 보면 호평을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욕을 먼저 하는 것이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중 어느 것을 먼저 듣는 것과 같은 이야기 인지는 모르겠지만.


1 혹평

  중학교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그 이후에 가끔씩, 최근에는 다빈치 코드나 조금 읽다 만 베토벤 어쩌고 저쩌고 10악장인가 뭔가 하는 책에서 이런 구성을 처음 보았다. 무작위 피라미드식 소설 진행. 처음에는 신선하기도 했고 뭔소린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에 그 이야기들이 하나로 쫙 합쳐지면서 아아, 이런 얘기구나 하고 알게 될 때는 굉장히 구성력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꽤 재미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구성으로 써보기도 하고, 또 읽어 보기도 한 입장에서 말하거니와 그러한 수수께끼 같은 구성은 독자보다는 쓰는 사람이 즐거운 형식이다. 게다가 이놈 저놈 한 번씩 시도해보는 유행 같은 구성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독창적이라는 느낌보다는 되려 통속적인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본문에 사용된 가름 그림의 변화나, 각 문단 번호가 바뀌는 것과 같은 기법은 말인즉슨 그 기법을 알아 차리는 사람들이나 재미있게 알고 볼만한 그런 재치있는 속임수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저자의 말' 혹은 '엮은이의 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도 읽는 습관이 안들어 있는 사람들이 그 작은 글씨 '일러두기'의 안내를 따르고 또 기억해서 그 위트를 눈치 챌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이미 나의 팬인 사람은 잘 따라오겠지 하고 미리 적당히 독자를 잘라서 염두에 두고 구성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살짝 불쾌한 마음이 든다. 나 자신을 빌어 변명해 말하자면 나는 그 뒤가 어떻게 될 것인가 너무 궁금해서 그림이 흐려졌다 생겼다 하는 것이나 문단 번호와 같은 것들은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침을 꼴깍꼴깍 삼켜가며 책을 읽었기 때문에 그런 세세한 것 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모르는 명사를 남발하고 그 이후에 가서 설명하는 것들과 아예 대명사화해서 등장인물끼리 즐겁게 얘기 하는 것들을 나중에야 알아 차리는 과정에서 독자는 책 속의 시대와 분리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차분한 설명 없이 이야기 진행 속의 힌트에 의해서 눈치 빠르게 알아 차리지 않으면 끝까지 도대체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어리둥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도 마찬가지로, 아는 사람만 따라오라고 하는 독단처럼 느껴져 버린다.
  비교하자면, 이영도씨의 다른 책 '피를 마시는 새' 에서는 ~마시는 새 를 아주 처음 읽는 독자들을 배려해서 전편인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왔던 개념이나 명사들을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 줬던 것 과는 다르게 '아일페사스'가 누구인지 모르는 독자는 영 어리둥절하게 갸웃 거리며 책을 읽어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호평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차이이이이이이이이!!!!!!!!!!!!!!!!!!!!!!!!!!!! 운차이이이이잉  운차이이이이 ;ㅅ;ㅅ;ㅅ;ㅅ;ㅅ; 운차이이이이이이이 운차이이이이 운차이이으아어어으아어어어 ;ㅅ; 엉엉엉 운차이 엉엉 ;ㅅ;
 (일단 먼저 소리를 질러 놓고)

 벼르고 벼르다가 책을 잡게 된 그 날 나는 서울에서 천안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천안을 지나칠 뻔 했고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자꾸만 가방 속의 그림자 자국이 어찌나 생각 나던지. 다 읽고 나서는 아, 이제 적당히 내용을 알았으니까 한 번 더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찬찬히 빼먹은 것을 확인해 하면서 다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다. 이미 그림자 자국을 읽어서 나를 살근살근 약올렸던 친구 말에 의하면 

 "일단 다 읽고, 다시 읽으면서 운차이 나온 데가 또 없나 확인 하는 거지."

 이렇게 되는 것이다. 아아 ;ㅅ;

 속편의 매력이라는 것은,
 더욱이 전편에 비해 시간이 많이 지난 속편의 경우는, 지난 책의 주인공들과 함께 여행한 자신(독자)은 전편 주인공들의 시간의 흐름에서 비껴, 책의 뒷페이지를 마음 껏 볼 수 있는 신과 같은 위치에서 대명사화 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루릴이 일년 내내 그들의 기일을 기리면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게 독자는 그들의 뒷 이야기와 그들의 모험을 다시 떠올리면서 마치 함께 모험했던 동지들을 추억하는 것과 같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아 그 모험의 향수, 마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러한 향수는 정말이지 독특하고 신비한 체험이다. (더욱이 인생이 짧은 나로서는 아직은, 직접 살아가면서 느낄 수 없는 느낌이다)

  하지만 속편의 위험은, 이영도씨가 드래곤라자 이후 시대를 쓴 퓨처워커를 썼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던 "후치 언제 나와!" 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그 전편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 콱 박혀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 때문에 새로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그리 큰 애정을 보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퓨처워커에서 나온 미+쳉 커플 보다 변변한 포옹도 제대로 안하는 운차이+네리아의 언행에 더 울고 웃고 한 나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 어디서 또 그 친구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을까 촉각을 세우며 그 부분이 지나가기 무섭게 한숨이 푹푹 나오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드래곤 라자를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다. 

 그으래에도!
 재밌었다. 이히히히히

 책 뒤에 나온 카피를 보면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아시아를 휩쓴 베스트셀러 드래곤 라자 출간 10주년 기념작' 이라고 나오는데 왜 이렇게 재밌는 책이 아시아 권에서만 돌까? 영어로 번역하기가 힘든가 아니면 뭐 그 문화코드가 안맞나. 딱히 그럴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영도씨 그늘 밑으로!!  요요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