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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040908

by Desmios 2009. 3. 7.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뫼비우스의 띠 장마 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조세희 (창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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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 ꃃ①'난쟁이'의 잘못. ②『옛』'난쟁이'의 옛말.

독후감을 시작하기에 앞서 난장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 잠시 말하겠다. 난쟁이가 요즘에는 표준어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는 모두 '난장이' 라고 표현이 되어있다. 그래서 특별한 의미 없이 난쟁이를 난장이로 표기하겠다.

 

 

 

 

 

 

 특별한 책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새로 나오는 새 책의 유혹으로 같은 책을 또 읽지는 않는 편이다. 난쏘공을 읽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내가 '어렸을 때'로 기억하고 있는 첫 난쏘공 독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고 이해가 안 갔다. 난쏘공이 야하다고 나에게 말한 녀석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뒷부분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보아 읽다가 그만 둔 것 같다. 나는 아마 나이가 들어 이 책을 또 읽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또 읽을 것이다.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함에,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경향이 있다.

 

난쏘공은 그런 책이다.

 

난쏘공을 읽으면 우울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나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슬픔까지 가중되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다.

결국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서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이 가식 없는 나의 이기적이며 솔직하여 바보스러운 대답이다.  많은 사람들, 혹 그 중에 내가 끼어 있을 수도 있는 잘 길러진 우민(愚民; 어리석은 백성)은 우리나라 노동계는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그렇게 보인다. 주 5일 근무제, 끝없는 파업 파업 파업, 그들의 모든 입을 열어 놓은 것 같이 소란스럽다. 하지만 다른 의미의 노동 계급에서는 아직도 비인간적인 대우의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불이 났는데 도망치지도 못하고 갇힌 채로 타 죽은 모 다방 여종업원들이 그 예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많은 곳에서 노동자 착취가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돈을 요구하는 이들을 무시한다. 그것은 나의 이기심이다. 정이 메말랐다 손가락질해도 소용없다. 돈을 주는 이에게는 그의 논리가. 돈을 주지 않는 이에게는 그의 논리가 있은 법이다. 학교에서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나는 결국 후자의 논리이며, 윽박지르며 가르치는 자신들의 꼴을 보라고 욕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 봤자, 어차피 우리는 모두 난장이, 인간이다

 

미안하다. 궤도회전에서 윤호는 십대 노동자들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 토론하고 있는 아이들을 질책했다. 감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윤호는 모든 것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곳 하늘빛, 그들의 식탁과 잠자리, 불편한 잠자리에서 고향 꿈을 꾸다 일어나 앉는 어린 소년 소녀 노동자들의 얼굴 표정을. 그들은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듣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역시 그들을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고도의 산업 성장은 노동자들을 착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린 아직 가난 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했더라면 내가 노동자의 딸이었을 것과 비슷한 이치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돌려줄 차례라고 말했다.

 

 

미안하게도 나는 공장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난장이이다. 노동을 함으로써 사회로부터 억압 받고 소수의 몇에 의해 조정되는 기계로서의 난장이가 아닌, 다른 의미의 난장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의미에서 21세기의 새롭고 오래된 난장이이다. 돈을 받지 않고 낸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우리는 아침 7시 50분에 학교에 들어와 저녁 8시 40분 혹은 10시 40분에 학교에서 나온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그 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에게는 휴일도, 주말도 없다. 학생이라는 것은 일종의 채무자이고 죄인이다. 끊임없이 공부를 재촉 받아야 하고 하지 않으면 만인의 질책을 받는다. 빌어먹을 교육제도는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공장주들이 노동자에게 관심이 없던 것처럼 교육부는 우리에게 관심이 엇다. 우리의 의사는 존중되지 않는다. 00대학 00명 입학! 이라는 플랜카드를 붙여 과시하기 좋아하는 선생들과 남들 다 하는 공부 너도 하라며 학원에 처넣는 부모들의 의사가 중요할 뿐이다. 매일 사교육비 타령을 하면서 사교육비를 늘릴만하고 애들 숨을 죽이는 이상한 정책을 거나하게 펼쳐댄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엔 모두들 취업으로 달려 나간다. 자기 자신의 상황에 최대한의 관심을 갖는 인간의 특성을 교육자라며 아직도 모른다. 학생에게 묻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피해자이다.

 

 난장이는 죽었다. 난장이네 큰아들 영수도 죽었다. 나는 모순 되게도 언제나 죽고 싶어 하지만 시대에 치어 죽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우린 자랄 것이다. 죽을 만한 고통에, 남들 다 한 일이라며 대중에 빗댄 논리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말도 안 된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신봉하고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난장이가 되었음을 느끼며 절망할 것이다.

 

 학생 소설이 있을 턱이 없다. 쓸 시간도, 읽을 시간도 없고 어른들은 학생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각각의 사회에 갈라져 난장이의 모습을 하고 서있다. 어쩌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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