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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헤르만 헤세 - 데미안 050816

by Desmios 2009. 3. 13.
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헤르만 헤세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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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은 초등학생 시절 내 영웅이었다.

 나는 데미안을 동경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전혀 데미안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데미안을 동경했던 것 같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데미안을 다시 읽어 보았지만 나는 데미안을, 이번에는 인물 데미안이 아니라 소설 데미안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더 나이를 먹은 다음 다시 이 책을 읽어 봐야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나는 헤르만 헤세를 좋아한다. 데미안과 그 외의 책들을 읽고 '헤르만 헤세가 좋다' 생각했는데 정작 왜 좋아하는지를 잊어버렸던 나는 오늘 다시 데미안을 읽으며 그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나는 어려워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좋아하고 데미안은 그런 책이다. 그리고 그런 책을 쓴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영도를 좋아하는 것 처럼,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온 나에게 있어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새로운 해석의 성경 이야기는 놀랍다 못해 충격이었다. 아벨은 겁쟁이고 카인이 사실은 용감한 사람이라니, 카인의 표적이 표창이라니! 특히나 나에게 충격이었던 것은 골고다 언덕에서의 두 강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개종한 강도 말고, 끝까지 악인으로 죽었던 그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고 자신을 그 길에 이끈 악마를 '배신'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  신념이라고 불리는 자존심을 끌어 안고 사는 나에게 있어 그 얘기는 정말로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것도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는 지금의 내모습도 분명 웃기겠지만 나는 현재 이렇게 생각한다. 성경은 성경이고 사람이 다양한 것 만큼 그 해석도 다양하다. 그럼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알고 내가 믿는 것을 믿겠다. 그렇게 해석하고 싶으면 해석해라. 맞다고 동의 할 생각은 없지만, 생각까지도 하지 말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뭐 대략 이런 식이다. 나도 정확하게 정리까지는 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예전 보다 여유 있게 이 이야기를 웃어 넘길 수 있다는 것 뿐이다.

 

 내가 보기에 데미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자신이, 진정한 인간이 되는 일이고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결국 성공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내가 되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내게는 데미안 같은 인도자도 없고 에바부인 같은 이상향도 없다. 그저 온통 불만스런 세상 속에 떨어져 있는 불만족스런 나일 뿐이다. 여기서의 인도자나 이상향 같은 것이야 종교적인 문제니 더이상 말하지는 않겠지만 현재의 나는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