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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김원일 - 마당깊은 집

by Desmios 2009. 4. 4.
마당깊은 집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원일 (문학과지성사,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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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땐가 중학교 때 어머니가 사오신 '마당깊은 집'을 다시 읽었다. 그 당시 읽었을 때는 한국전쟁 이후의 어려운 삶과 셋방 살이가 마냥 남의 일 같고 신기한 마음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는 타지에서 자기 집 없이 계속 옮겨다니는 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사람은 자기 사는 처지에 따라서 보이는 게 다르다. 그렇지만 이사 지겹다는 둥, 내 집이 갖고 싶다는 둥 하는 타령은 지난 번 포스트 부터 지지배배 계속 하고 있어서 지겨울 테니 그쯤 하고, 여기 또 사람 살이에 대한 부분이 있다.

  어머니 말씀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 다음에 어른이 된다고 모든 경쟁 상대로부터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신문팔이와 신문 배달을 통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눈치로 터득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얼마만큼 이기적이며 그 생존 경쟁에서 이기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셈이었다. 어머니 말처럼 장차 내가 집안의 의지기둥이 되려면 남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데, 그러자면 정직과 성실만으로는 어렵고 실력·체력·노력, 거기에 탐욕·교활·언변 따위까지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도무지 어머니의 그 맺힌 한을 풀어 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여자로 변할 수 없다면 어서 세월이 흘러 머리 허옇게 센 노인이 되고 싶다고 내가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날 아침 어머니 그 말씀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군에 입대할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런 마음은 절정에 이르러 정말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던 게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삼 년 졸병 생활을 무사히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입대 영장을 손에 쥐자, 입대·제대·직장 구하기·결혼, 그래서 처자식 먹여살리기의 뻔한 내 앞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만 암담해져 빨리 늙은이가 되어 내게 기대를 거는 모든 이들의 눈길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으로 남고 싶었다.

  내가 중학생 때는, 중학교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다니는 곳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꾸준히 학교에 나가서 점수를 잘 받고 내신이 좋으면 좋은 고등학교에 가서 또 열심히 공부 할 수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어떤 아이들은 그냥 잤다. 아기들 처럼,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왔더니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다니는 곳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하면 내신이 좋거나 혹은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어떤 아이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어떤 아이들은 미대에 간다며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와 얼굴에 동일한 시간을 투자하며 야자는 빠졌다.
  나는 좀 덜 공부했던 모양으로 아주 좋은 대학에는 못들어갔고, 여하튼 대학에 들어왔더니 대학은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다니는 곳이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아주 소수고, 대부분 대학에 잔존하는 사람들이 그 상아탑에서 더 오래 공부 할 수 있었다. 빠른 사람들은 재빨리 대학에서 벗어나 어디론가로 사라졌고 다른 대학으로 들어가는 사람, 남을 죽이는 기술을 배우러 가는 사람, 사람 많은 광화문 사거리에 서있는 것 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 지나며 돌아다녔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가보다. 사람들은 좁은 문으로, 더 좁은 문으로, 고행하며 머리 숙이고 들어간다.

  그래서 직장에 들어가면 더 높은 더 좋은 자리, 혹은 멋진 반려, 훌륭한 집, 아이들의 학원, 아이들의 대학, 노년 계획, 풍성한 연금을 위해 또또또 걸어 갈까? 
  4월 달력 밑에 작게 5월 달력이 나와 있는 것 처럼 우리네 인생이 빤하다. 착착 수순을 밟아 나간다. 모든 사람의 인생을 요약하면 '태어나서-살다가-죽었다' 일 수 있다.

 살아가자, 죽을 수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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