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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다자이 오사무 - 인간 실격

by Desmios 2009. 5. 18.
인간 실격 - 4점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민음사

  무인도에 홀딱 벗겨서 던져놔도 잘 살아 남을 것 같은 사람이 있다. 필경 누군가 구해주러 오면 그 섬의 총독인양 허세를 부려 부동산을 팔아 먹을 것이다. "여기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섬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장소로, 저쪽에 전망대를 짓고 이쪽에 연못을 파고....수년간 최소 십만의 관광객이 보러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요"
  하지만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를 성냥, 텐트, 코펠, 필기도구, 공구세트와 함께 무인도에 넣어주어도 금방 굶어 죽을 것이 분명하다. 요조의 굶어죽은 시체 옆에는 아마 빽빽하게 채워진 구슬픈 무인도 일기만 남을 것 같다. 인생이 어쩌니 저쩌니 하고 죽는 소리를 하는 놈들은 굶기면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 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 실격을 읽다 보니 요조를 굶기기도 맥이 빠진다. 그 자신도 말했지만 요조는 공복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다(pp14,15) 무언가 어렵게 산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굶어 보지는 않은 것이다. 정많은 여자들에게 기생하고 형들에게 돈을 받으면서 어떻게든지 굶지 만은 않으면서 죽고 싶다고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놈을 굶겨 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아오 줘 팰 수도 없고 맥 빠져)

  사실 나는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자연의 섭리이며 당연한 것이니 그런 일에 일일이 반응을 보이기는 귀찮다고 생각'한다. 오죠가 두번 자살 시도를 했다가 다행히 죽어 버렸어도 별다르게 가엽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실 말하자면 '죽고 싶어 하는 놈들은 죽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한다. 자살 시도를 다섯번이나 했네 어쨌네 어휴 얼마나 제대로 못했으면 다섯번이나 자살시도를 할까 가여워라 핏.
  하지만 확실히 인간 실격에서는 제대로 인간다운 냄새가 난다. 그 더러운 악취 말이다. 더 묘사하자면 담배 냄새와 술 냄새, 술먹고 토한 냄새에 홀아비 냄새, 덜 씻은 냄새가 섞인 인간적이다 못해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그것도 강렬하게! 폴 오스터네 주인공과 다른 것은 바로 이런 인간적 냄새다. (자꾸 씹어서 미안한데 폴 오스터의 백치 주인공과 다자이 오사무의 병신 주인공을 비교하면 나는 차라리 오사무네 병신 쪽이 더 정이 간다. 아무래도 인종 차별인 것 같긴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어쩐지 옆 집, 같은 동네, 이 도시 어딘가에서 유전적 혈연이 아닌 정신적 연계로 점점이 이어져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우울증(=찌질함)엔 약이 없다.  우울한 사람을 아무리 위로해도 그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왜 이렇게 우울하냐고 화를 내는 건 그를 더 우울하게 만들 뿐이다. 우울에 대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우울하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고 내 할 일이나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다.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하기만 한 사람은 기껏 상대해봤자 얻는 것도 없고 나만 피곤해질 뿐이다.  그렇게 살다가 그냥 죽어버리라고, 말하면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말하니'하고 눈총을 받고 내 인격이 의심받으니, 생각만 하자. 괜히 그 우울함이 멋져 보여서 가볍게 우울한 척 할 필요 없다. 어린애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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