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는즐거움/이지적 성

시오노 나나미 - 남자들에게

by Desmios 2009. 6. 24.
남자들에게 - 6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한길사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값에 비해서 '남자들에게'라는 제목과 기획은 너무 조야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조야함에 홀랑 넘어가 도서관 책꽂이에서 책을 꺼낸 것도 사실이다. 친구가 다른 책을 고르고 있을 때 책장을 슥 훑다가 눈에 들어와서 고르게 되는 책으로는 역시 선정적인 제목이 최고다. 사람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나로서는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를 쓴 그 사람이라는 것도 한참 책을 읽다가 눈치를 챘다. 꽤 재미있는 관점이네 하면서 몇 장 더 읽다 보니 흥미가 생겼고 조금 더 읽었을 때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기억이 나면서 좀 더 진지한 눈으로 책을 보게 되었다.

  사실 약간 잘난척 하는 구절이나, 엘리트적 우월감, 나는 유명한 작가임! 하는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마인 이야기는 확실히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참고 넘어갈만하다. (무라카미 류나 마광수에 단련되어 있다면 이정도야 굉장히 귀엽다) (헉! 지금 찾아보니까 아직 안돌아가신분이잖아! 설마 내 블로그 글이 번역되어서 어떤 어린놈이 시오노 할머니보고 귀엽다고 했네 할머니라고 했네 이러면서 노발대발 난리 나는거 아냐?) 시오노 나나미 본인도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 했지만 행복하고 굴곡 없이 살아온 사람은 어딘가 그래 보이는 티가 난다. 

 p 188 : 아마도 내가 고학이나 고행이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뿐 아니라, 그렇게 고생한 우인은 감탄은 하지만 성공 후에 그런 사람들의 행위나 말끝에 어쩐지 비뚤어진 구석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인간은 되도록이면 양지를 걷는 편이 좋겠다고 느끼곤 한다.

인간이란 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본성은 선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반짝반짝사람을 보면 어쩐지 바보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말해, 반짝반짝사람들이 아무리 아는 게 많고 어려운 말 줄줄 해도, 그 반짝반짝 함이 옅보이면 '으이구 등신, 저렇게 매사에 긍정적이라니, 저거 저러다 누가 코베가는 줄도 모르는거 아냐?'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반짝반짝주의자가 아니라면 (바로나같이 꼬인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인간이 선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꼭꼭 기억하면서, 무슨 말이 나오면 엥이? 뭐야이거 하며 삐딱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봐야 한다.

  그래도 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보면서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는지 내가 접어서 표시하려고 한 부분에 다른 사람이 이미 접은 표시가 있었다. 역시, 선생님이 일곱반에 들어가서 똑같은 수업을 해도 똑같은 타이밍에 똑같은 농담에서 안 웃는 반 없는 법이다.  


 * 추신 : 정말이지, 번역서 중에서도 일본어 번역서만큼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 게 없다. 절대 우리나라에선 쓰는 표현이 아닌데도 굳이 그걸 어투까지 옮겨서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는다. 가로보고 모로 봐도 문장이 어색한데 이런 게 여기저기 버젓이 돌아다닌다니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