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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이지적 성

박노해 -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

by Desmios 2010. 4. 28.

나도 야한여자가 좋다 원문링크


  후배가 인터넷에서 재밌는 글을 봤는데 한번 생각해 볼만 하다고 하면서 박노해씨의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를 보여줬다. 마광수[각주:1]씨의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 수필은, 읽고 '아 뭐 그러십니까'하고 잊어버렸고, 변정수[각주:2]씨의 글에서도 야한 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건 기억이 안난다.  그러고보니 요즘 뭔가 연극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한다고 그랬던가? 선정적인 사진이 들어간 홍보 기사를 본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아무튼 요즘, "포르노의 선정이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기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회학 (소)논문을 쓰고 있는데, 덕분에 만날 하드코어니 순결이데올로기를 들여다 보는 내가 마침 생각나서 소개해 준 듯 하다. 그런데 박노해[각주:3]와 야한 여자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이래? 하고 다 읽은 후에 약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저렇게 긴 손톱을 갖고 밥은 어떻게 먹고 빨래는 어떻게 하며 화장실에선 어떻게 하고 머리는 어떻게 감누? 요리는 어떻게 하고 설사 사무직이라 해도 컴퓨터 자판은 어찌 두들기누? 정말 걱정되기 짝이 없구나. 땀구멍을 다 막아버릴 정도의 화장은 또 어떻구요. 땀이 나면 어쩌지? 눈물은 어떻게 흘리지? 짙은 입술루즈 때문에 음식은 어찌 묵노? 저 높은 하이힐을 신고 가다 자빠지면 우짜노? 가슴과 엉덩이에 액센트를 주고자 치마끝을 좁게 만든 원피스를 입고서 계단이나 횡단보도에선 어찌 달리누?

  여성을 만드는 것은 여성이 아니다. 아마도 박노해가 만난 이 야한 여자를 만든 것은 야한 여자 자신이 아닐 것이다. 아마 박노해도 나중에는 야한 여자 개인이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상품화 시키고, 성을 상품화시키고, 온 세상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야하게 상품화시키는 이 치떨리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체계', 이 더럽고 추악한 '야한 세상'"이 나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를 고상하고 단아하고 우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야하게 치장하게 만드는 이 세상 말이다.

자히아 드하르(18)

모로코계 소녀 매춘부 자히아 드하르(18·사진) 사진 : 동아포토 / 드하르 페이스북


  그렇지만 야한여자는 야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은 야하지 않은 여자에게 야하게 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폭력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당당한 쾌락추구에 기초하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마광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중

  푸코는 성에 대해 통제 불가능한 감각의 파도, 무정부주의적 창조성이 잠재 되어 있다고 표현했다. 나는 권력이 성의 억압을 통해 사람을 억압하며 성 해방을 통해 이데올로기니 담론이니, 여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느니 여자가 그게 뭐니 하는 귀찮은 모든 권력적 언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나는 박노해의 입장에 서있다고도, 마광수의 입장에 서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나의 마음은 마광수의 편에, 나의 머리는 박노해의 편에 서있다. 박노해가 본 '야한 여자'가 성 해방의 증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마광수의 책을 읽으면서 비웃었던 것이다. 아무튼 수수한 여자가 상업주의에서 벗어난 순수한 여성성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박노해의 글을 읽으면서 기분이 불쾌했던 것이다. 

 과연 참으로 야한 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될까 하는 이상을 받아 들일 수가 없으면서도 과연 참으로 노동자를 위한 세상을 위해 숨어 다니고, 굶은, 그리하여 참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아지고 있는, 나아지게 만든 사람 본인의 증언을 보면서 나는 복잡미묘한 심정이 들어 버린다.  나의 이상은 참으로 구슬픈 이상주의가 아닐 수 없다.

  1. 국문학 교수, '즐거운 사라' 소설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징역도 살았다고 함 [본문으로]
  2. 문화비평가 '만장일치는 무효다' '나는 남자의 몸에 갇힌 레즈비언'등의 책이 있음 [본문으로]
  3. 노동운동가로 유명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