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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박현욱 - 동정 없는 세상

by Desmios 2010. 11. 5.
동정 없는 세상 - 6점
박현욱 지음/문학동네

  사회학과 전공과목인 '가족사회학'에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를 짧게 보았다. 평소 영화보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결혼과 관련한 영화라고 하면 '결혼은 미친짓이다' 밖에 본적이 없다. 발제의 일부로 본 것이라 '아내가 결혼했다'를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네이버 영화 정보 평점이 극과 극으로 갈리다가 결국 5.09를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업에서도 평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강의 제목이 가족사회학이기도 해서 가족과 결혼에 보수적인 시각에 대해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실 그런 사람들을 열불나게 해서 토론을 아작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아오 김빠져. 교수도 보수적이고 (결국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에 대해서 좀 알고 결혼을 하자는 것이다) 강의를 듣는 사람 중에 말을 하는 사람은 1/3정도 밖에 안되는 데다가 그나마도 일등 신부감, 신랑감들이 많이 있다(남편이 돈벌어오면 아내는 집에서 살림하겠다는). 거기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쟨 참 특이하네'정도 뿐인데 김샌다 김새.

 아무튼 간에 동정없는 세상에 대한 독후감을 쓰려고 했는데 왜 아내가 결혼했다 얘기를 이렇게 쓰고 있는거지-_-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은 건 꽤 됐는데 중간고사 시험 끝나고, 갑자기 과제니 팀플이니 마구마구 들이 닥쳐서 내용을 다 까먹었다. 지금 기억 나는 것은 결국 책 한권을 통틀어 두번밖에 못했다는 것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

20. 만화가게 중
 p.153-154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새삼스럽게 미대 갈 생각은 없어.
 -왜? 하고 싶었다면서.
 -뭐든지 하고 싶었던 그때에 해야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왜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나한테 미대는 그래. 이제 와서 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처럼 강렬하게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이지.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왜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리게 되거든. 자꾸 그러다보면 결국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져버려. 우물이라는 것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나오지만 퍼내지 않다보면 결국 물이 마르게 되잖니. 그런 것처럼 욕구라는 것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새로운 욕구가 샘솟지만 포기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욕구도 생기지 않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쉽지야 않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만들어서 해봐.


  보통 욕구를 채우는 것은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욕망이라던가) 여기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물론 하고 싶은 걸 계속 참다보면 나중엔 아예 하고 싶지 않아진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지만 (그냥 참기만 해서 된다면 세상에 절이 뭐하러 있겠는가) 욕구/욕망 없는 삶이란 너무 허무해 보인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의 무미건조함이라니.

  그런고로, 난 저번주 월요일에 그렇게 먹고 싶던 고기를 (그래도 차마 혼자 먹을 수는 없어서 팀플 끝난 팀원을 꼬셔가지고) 화요일에 먹었다. 그런데 어제 먹고 싶던 김은 못먹었으니 지금이라도 거실에 나가서 김 한장을 집어 먹어야 겠다. 요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마냥 귀찮기만 해서 책도 '무기력의 심리'를 읽으려고 하는 차에 무언가 먹고 싶어하는 욕구라도 채워주지 않다가는 냄새 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