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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이지적 성

전인권 - 남자의 탄생

by Desmios 2010. 11. 28.
남자의 탄생 - 8점
전인권 지음/푸른숲

  저자인 '전인권全寅權,'을 '가수 전인권全仁權,'으로 알고 깜짝 놀란 사람은 분명 나 뿐만이 아니다. 책 표지에 있는 이상한 색깔의 글자들을 화면으로 보고서야 '아, 사람 얼굴이구나' 한 사람도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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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全寅權 

전인권 교수

1959(?)-2005[각주:1]

 강원도 철원 출생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대학원 석박사 과정
 오스트리아 빈대학 정치학과 수학

 성공회대 연구교수
 서울산업대, 홍익대 출강

 정치평론가, 미술평론가

저서
 1997, 편견 없는 김대중 이야기
 2000,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
 2003, 남자의 탄생
 2006, 박정희 평전
 2006, 전인권이 읽은 사람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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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사회학 과목에서 '부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 책을 발제했다. (모성에는 '모성애'라는 말이 어울리는데 왜 부성에는 '부성애'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질까?) 책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걸가지고 학술적인 발제를 어떻게 할까 좀 걱정 됐는데 생각보다 잘 된듯!



  자기 성찰식으로 쓰여진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아, 이거 내 얘기구만 부끄럽네'라고 생각할 훌륭한 남성이 몇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 라고 매도하는 그 '니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는 건 분명하다. 사실 내 취향은, 자기 성찰에 기반한 이런 겸손하고 우아한 책보다는 
'멍청한 영남인', '남자놈들을 죽여라', '파렴치한, 빌어먹을 비장애인들', '엿먹어라, 낯 두꺼운 이성애자들', '서울대, 니들끼리 다 해먹어라'[각주:6] 같은 직설적인 것들이지만
 '네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 라는 순하디 순한 표현일지라도 자신을 빌어 자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저자가 벌써 작고했는 것이다.


  잠깐 딴 소리를 하자면, 얼마전에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2009 MTV, VMA(Video Music Awards)를 보았다. 위대한 사람들은 왜 일찍 죽는 걸까. 착하고 위대했기 때문에 더욱 일찍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의 새 책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독서메모>

 나는 누구인가, '가면 또는 페르소나' p.15

  페르소나(persona)는 배우의 가면과 같은 것이다. 같은 의미로 페르소나는 사람이 자기 아닌 사람으로 나타내려고 할 때 쓰는 가면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해야하고, 타인의 요구에 맞추어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페르소나는 유용하고 꼭 필요한 가면이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해로울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페르소나를 실제의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난다. 그는 우리 삶에 필요한 또 다른 성격들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진정한 자기로부터 소외된다. 이런 현상은 정신적 건강을 크게 해치고, 심할 경우 인생을 망치게 된다.
 -<정신분석 용어 사전>(미국 정신분석학회 편) 참조

  한국 사람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은 제쳐놓고 '딸' '아들' '어머니' '아버지' '여자' '남자' '학생' ... 등과 같은 페르소나, 즉 사회적 역할에 더 충실한 삶을 산다. 문제는 그 역할을 '페르소나' 즉 '가면'이 아니라, 실제의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던질 수도 없고, 던졌다 해도 제대로 답을 못하거나 질문 자체를 잊게 된다.

  환경에 대한 방어의 일종으로 만드는 가면, 페르소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용어이지만 자신이 '만든' 페르소나를 실제의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착실하고 씩씩한 가면, 동생에는 위엄있는 가면, 동아리 선배들에게는 애교많고 살랑거리는 가면,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에게는 똘똘하고 논리정연한 가면. 이 모든 모습들은 모두 나 자신이 아니라고도, 페르소나일 뿐이라고도 할 수 없다. 최근 '인간 컴퓨터 타입(이전 포스트 링크)'인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서. 나란 어떤 사람인가 하고, 정말 오래되고 오래되었지만 누구도 이렇다고 확실하게 얘기 할 수 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


 8장. 재떨이 고고학, '신보다 높은 아버지' p.183

  (전략) 무엇보다 조상제사의 주인은 신(神)이 아니고, 저 하늘에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조상님들이다. 또 그것은 여자들의 참여 권리를 박탈한 후 남자들끼리 모여 서열과 계급을 정하고, 그것을 세세연년 확인하는 의식이다. 또 이 다음에는 내가 조상의 위치에 갈 것이니, 내가 나에게 제사를 지내는 격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상제사는 이번에는 내가 왕을 하고 다음에는 네가 왕을 한다고 약속하는 병정놀이 같은 데가 있었다.

  입다물고 가만히만 있으면 다음에 왕을 할 수 있는 데, 왕놀이에서 쫓겨날 위험을 감수하며 왕놀이가 유치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바로 용기다. 수염 허연 사람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지팡이로 난타를 할 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점잔빼면서 우스꽝스럽게 걷냐고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냔 말이다.
  우리 앞집에 있는 할머니한테 내가 당신이 일찍 잠든다 그래서 8시 이후에는 오토바이 소리를 안내려고 노력하니, 당신도 내가 늦게 일어나는 걸 좀 감안해서 아침에 소리지르면서 싸우지좀 말아 주어- 그랬다가는 당장 머리채 잡히는 것.


 13장. 두 가지 성 이야기, '더러운 성, 깨끗한 성' p.283

  (전략) 아이들은 결코 매춘을 찬성하지 않았다. 반대로 아주 혐오했다. 매춘 여성은 더러운 사람들이었으며 아이들은 깨끗한 사람들이었다. 매춘 여성의 효용은 이중적이었다. 무한한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자, '그래도 나는 너보다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보증수표였다.
  동굴 속 황제들은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을 모시지만,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매춘 여성들은 성적 측면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었다. 초등학생이라도 동굴 속 황제들은 언제나 그런 의미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요컨대, 매춘 여성들은 어떻게 얘기해도 상관없는 만만한 사람들이었고, 초등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마지막 욕구의 배출구요 노리개였다.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권위가 아니라 타자에 기대는 권위라는 것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한국 남자들을 읽는 키워드를 '허세[각주:7]'라고 한다면 도대체 왜 한국 남자들은 그렇게 허세를 부릴까? 쎈 척, 있는 척, 아는 척, 술자리에서 그네들의 허세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는, 남자들끼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코웃음이 나온다. 근래, 군대에 가있는 친구와 '군대와 허세'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왜 남자들은 허세를 부릴까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군대에 있는 남자들의 허세를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자기가 성취해 낸 지위가 아닌 연공으로 받은 지위이기 때문에 더욱 허세를 부린다, 자기 위치(계급)에 대한 불안 때문에 과시를 위해 허세를 부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친구는 '먹는다'는 표현을 쓰면서 '자기보다 계급 낮은 사람이 자기를 먹을까봐 - 자기에게 막대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닐까 하고 얘기를 해봤다.
  두 가지 성에서 나온 얘기 처럼, 동굴 속 황제는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신분이 낮은 사람 역시 자신들이 '정의'했을 뿐이고 근원적으로는 자기와 똑같이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무의식중에라도 내가 이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되고 이 것이 허세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의 사적인 기록이, 그 시대의 인간성을 대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은 집단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도, 여자도 한 번 씩 읽어보면 괜찮을 법한 책.


 + 함께 읽으면 좋(다)은 책
생애의발견한국인은어떻게살아가는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각국사회/문화 > 한국사회/문화
지은이 김찬호 (인물과사상사, 2009년)
상세보기


 + 참고 블로그
  독후감, 신동아 평론 http://blog.naver.com/transminds/80066257889
  출판저널 인터뷰 http://blog.naver.com/kadmon/120027466275
  한겨례신문 기사, 독후감, 책표지 그림해석 http://fireflybugs.blog.me/120040383484
  박정희 평전 소개 포스트 http://blog.naver.com/mobeas119/20032146511



  1. 2005년 8월 1일에 암으로 갑자기 타계하셨다는데. 원채 가수 전인권에 대한 자료만 많아서 정확한 출생연도가 몇년인지가 안나와 있다. 2003년 6월에 <출판저널>에 실린 '이달의 책, 이달의 저자-《남자의 탄생》 낸 전인권 인터뷰'를 참고했을 때 2003년에 '전인권(45)' 라고 쓰여진 것을 참고 하면 1959년생이던가(한국 나이로 썼을 경우) 1958년생(만 나이로 썼을 경우)일 것이다. 사실 이거 계산을 잘 못해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고 그랬다. [본문으로]
  2. 아직도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더이상 젖을 먹지 말라고 금지한 사건 [본문으로]
  3. 사전적 의미의 '황제'가 아니다. 동굴 속, 즉 제한된 공간이자 다른 세계와는 다른 안락한 공간 속에서 황제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혹은 그런 권위를 가진 것처럼 생각한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4.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와의 연관성을 위해 '아버지 살해'라는 말을 썼지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뭣이! 아버지를 살해해야 진정한 내 자신이 될 수 있다니 그게 무슨 감자찜쪄먹는 소리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런 반응이 있기도 했다. http://blog.naver.com/kadmon/120027466275 '출판저널, 전인권 인터뷰')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버지는 책을 읽다가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책의 귀퉁이를 접고, 자식에게도 그렇게 표시를 해놔야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창문을 지어주었다) 아들이 자라다보니 세상에는 포스트잍이라는 괜찮은 물건이 있어서 굳이 책 귀퉁이를 접지 않아도 내용을 표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이상 아버지가 알려준 방법을 쓰지 않고 (창문을 깨뜨리고) 자신의 방법을 이용할 때 자신 속의 아버지를 살해(아버지의 방법을 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좀 헷갈리고 있는 것,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면. 과연 이런 '아버지 살해'를 물리적 아버지에게 말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위의 예를 빌어 말하자면 아버지에게 포스트잍의 존재를 알려주고 그것을 쓰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까? [본문으로]
  5. 저자의 각주에 '아버지 살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적당한 말이 실려 있어 이를 옮겨본다. p. 212 10장. 아버지 살해의 논리 구조 중에서. - 근대가 아버지 살해의 역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음미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프란시스 베이컨과 데카르트는 여러 면에서 날카롭게 대립하지만, 전통과 권위를 믿지 않으며 스스로의 방법에 자신만만하게 의존하려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베이컨은 자기의 시대와 그 이전의 저명한 철학자들에 대하여 욕설을 퍼부었다. ...... 데카르트는 그가 배워온 모든 의견들에 대하여 '그것들을 일단 깨끗하게 쓸어버리고 난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램프레 히트,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303~304쪽. [본문으로]
  6. 변정수, "우리의 '적'(?)은 우리 안에 있다". <만장일치는 무효다>. 모티브. 2003. p.386-387 내용을 옮겨보자면, 나는 소망한다. 서령 그것이 내게 금지된 것일지라도 ...... 같은 직설적인 제목을 달고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실은 우리 자신임을 까발겨주는' 책이 시내 대형 서점에서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그런 책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최소한 그쯤은 돼야 <멍청한 백인들>을 읽으며 마음놓고 키득거리며 공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본문으로]
  7. 이 얘기를 했을 때 좋아하는, 하물며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려는 마음가짐이 옅보이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다. 정콕을 찔려서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짖는 것일까? 아니면 '쎈척'보다 더 신랄한 '허세'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는 타자(여성)의 비아냥이 보이기 때문일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