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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김성남 - 허난설헌

by Desmios 2010. 12. 1.
허난설헌
카테고리 미분류
지은이 김성남 (동문선, 2003년)
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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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권 빌리겠다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도, 여섯권을 빌리고 싶어서 쩔쩔매니 앞으로는 그냥, 여러권 빌릴 마음 가짐으로 시간이나 넉넉 잡고 도서관에 가야겠다. 이 책은, 원래 빌리려고 했던 메인디쉬가 아니었고, 디저트 정도로 빌린 책이다[각주:1]

  읽다보니, 내가 껴놓은 것이 아닌 책갈피와 표시, 심지어 책 뒤쪽에는 허난설헌과 여성학에 연관한 논문이 적혀 있기 까지 한 꽤 긴 포스트잍까지 들어 있었다. 누군가 이 책을 가지고 논문이라도 쓰려고 그랬는가 본데, 이 책? 흐음...

  소논문이나, 이보다 최소 1/3, 혹은 1/2 분량 만큼 더 작은 책이었으면 내용 중복 없이 꽉찬 느낌의 책이었을텐데- 싶은 책이다. 했던 얘기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그렇게 분량을 채워야 했습니까? 이런 느낌. 예전에 체게바라 평전을 읽을 때도 든 느낌이지만, 다른 사람의 생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분명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어째 찬양집을 읽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다. 내 여자친구, 내 남편이 아무리 잘난사람이라도 친구에게 그 자랑을 하고 있으면, 게다가 했던 말 또하고 또하고 하면 어찌 부끄럽고 지겹지 않겠는가. (아오 생각만 해도 열뻗치네) 그걸 차례, 참고문헌 포함해서 243페이지동안 말하고 있으니 어쩐지 허난설헌 빠 같다. 

  허난설헌의 천재성과 대함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이런 책을 243쪽이나 읽을 생각은 없는 사람에게 책의 내용, 허난설헌의 삶을 요약하자면->

  허난설헌은, 강원도 강릉에서 대사헌 허엽(1517-1580)의 셋째딸(허성1548-허봉1551-허난설헌1563-허균1569)로 태어났다. 여자는 이름을 가질 수 없는 시대에서 이름(초희), 자(경번), 호(난설헌)를 스스로 지어 가졌다. 자유로운 가풍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이달'이라는 허씨가문과 친분이 있던 서얼신분의 시인에게 시를 배웠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아마도 15세 즈음에 안동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결혼했다. 그런데 김성립은 허난설헌에 비해 학식도, 문장도, 심지어 도량도 부족해 허난설헌에게 열등감을 가졌다고 한다. 때문에 글공부를 이유로 외박이 잦았고, 허난설헌이 세상을 뜬 다음해에야 문과에 급제했는데 끽해여 정9품 홍문관에 밖에 오르지 못했다. 허난설헌은 시어머니의 구박을 견디며 혼자 규방에서 시를 지으며 살았지만 아이 둘이 죽고 친하게 지내던 오라비 허봉이 유배에서 풀린 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탈이 되어 황달에 걸려 죽자 27살에 요절했다. 허난설헌은 유언으로 자신의 작품을 불태워 달라고 하여 그 자료가 많지 않지만 동생인 허균이 허난설헌의 시를 모아 낸 작품 <난설헌집>과 임진왜란시 조선에 들어왔던 명나라 사신 오명제의 편집본 <조선시선>에 허난설헌의 시가 몇 편 남아 있어 그나마 허난설헌의 시를 만나 볼 수 있다. 허난설헌은 '어디 여자가 시를 지어!'라며 조선학자들에게서 표절이니 위작이니 하는 욕을 많이 들었지만 중국에서는 꽤 높히 평가받았다. (여전히 표절이니 하는 얘기는 있었지만)



  지난번에 5만원권 지폐 얘기에서도 잠깐 썼지만 (신오만원권 - 가짜 신사임당 링크) 허난설헌이 우리나라의 여성위인으로 손꼽히며 지폐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 것은, 초상화가 없어서도, 시가 신사임당보다 뒤져서도 아닌 그 시대의 사람들과 현대인들이 그녀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잘 섬기지 못한 아내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났더라도 위인으로 삼아 숭앙하기는 껄끄럽기 때문이다. 왜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리 많을까. 괜히 엄한 위인을 만들어내면서 거짓부렁하지 말고 허난설헌을 모시기 싫었던 삐뚤어진 마음과, 모시고자 노력하지 않았던 자신의 게으름을 솔직하게 반성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책 속에서 가장 좋았던 허난설헌의 시>


<가난한 여인의 노래>

얼굴 맵시 어찌 남에게 떨어지리요,
바느질 솜씨 길쌈 솜씨 모두 좋건만.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다고,
중매 할미 모두 나를 몰라 준다오.

밤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노라니,
베틀 소리만 삐걱삐걱 차갑게 울리는데.
베틀에 짜여진 베 한필,
결국 누구의 옷이 되는가?

손에 가위 쥐고 마름질하니,
밤이 차가워 열 손가락 곱아온다.
남을 위해 시집가는 옷을 짓고 있지만,
해마다 나는 여전히 홀로 살고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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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날의 책 대여 목록은, '나는 요조숙녀가 되고 싶지 않다'-에피타이저, '무기력의 심리'-스프, '남자의 탄생'-메인디쉬, '허난설헌'-디저트, '검은 책'-음료 정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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