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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이지적 성

노라 빈센트 - 548일 남장체험

by Desmios 2011. 1. 4.
548일 남장체험 - 8점
노라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위즈덤하우스

  지난 학기 가족사회학(A+ㅋㅋ) 과목에서 한국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바라는 이상형에 대한 얘기를 했다. 우리끼리 해본 얘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사할 점이 있을테니 옮겨본다.

 한국 사회의 남성상
 한국 사회의 여성상
 1 감정을 절제 할 줄 알아야 한다
 2 강해야 한다 / 힘이 세야 한다
 3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4 기술,기계를 잘 다룬다
 5 의리가 있어야 한다
 6 군필
 7 남성미/야성적(이)가 있어야 한다
 8 야망이 있어야 한다
 9 스포츠를 좋아해야 한다
 10 과묵해야 한다
 11 독립적이어야 한다
 1 다정다감해야 한다
 2 약한 모습
 3 현모양처
 4 요리, 가사일을 잘 해야 한다.
 5 조신해야 한다.
 6 긴머리, S 라인, 예뻐야 한다
 7 애교가 많다.
 8 수다
 9 쇼핑을 좋아한다.
 10 섬세해야 한다.
 11 배려할 줄 안다.


  각자 자신이 해당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골라 보았는데 꽤 남자 같아 보이는 사람도, 꿈이 현모양처인 사람도 이 모두가 해당되는 경우는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자인 내가 해당되는 것을 말할 차례가 왔을 때, 내가 해당하는 여성성으로 꼽은 세 가지 중 수다 만 빼고 나머지 '배려 할 줄 안다'와 '겸손하다'는 비웃음을 당했다. (..나도 알고 있어... 나름 배려 한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는 것 정도는..)
  한국 사회, 그리고 다른 나라도 양성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것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남성에게도 그 것은 과중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이러한 남성의 부담에 대해 여성이 썼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재밌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인 레즈비언, 노라 빈센트가 남장을 하고 네드로서 남성사회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다. 네드는 노동자계급의 볼링센터에 들어가고, 스트립클럽에서 랩댄스를 해보고, 여자도 꼬셔보는 등. 남자들이 여자에게 말하지 않고 모여있는 여러그룹에 머리를 들이 밀어 한 번씩 살펴 본다.

   그러나 내가 실험 결과를 얻어 기록한다 해도 이 책이 과학적이거나 객관적인 연구서는 될 수 없다. 내 관찰 내용은 최대한 적절하게 보려 해도 나의 편견이 넘쳐난다. 이 책은 남성에 근접한 생활을 한 여성의 시각으로 미국의 여섯 개 도시를 둘러보고 쓴 일종의 기행문이다.

  저자의 통찰력이 훌륭하기 때문에 자꾸만 여기에 나온 남자들의 특징을 일반화 하고 싶어지는 것만 제외하면, 이 책은 아주 재미있다.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라 글빨도 좋고, 대상을 따뜻하게 볼 줄 안다. 따뜻하게 본다는 게 말이 쉽지, 실제로 애정이 없으면 아주 힘든 일이다.



  남자가 사실은 가여운 존재라는 것은 한국에서 사람들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IMF 이후 대두된 부성은 많은 '아버지'들의 괴로움을 소리 높혀 외쳤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에서 아버지가 정말로 징징거릴 수 있을까? 하물며 아버지가 아닌 남자들은?

  이런 여자들은 좌지우지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동시에 약한 구석이 있는 남자를 원했다. 개인성을 보여주고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 표현력과 직관력이 있고 조화로운 사람을 원했다. 실은 바로 내가 그런 인물이어서 늘 점수를 땄지만, 그와 동시에 '세계를 호령하는 위인상'이 되어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남성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카이사르처럼 사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 짐이지만, 동시에 감수성 있는 신세대 남자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매춘부/성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면, 남성들도 똑같이 전사/시인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더욱이 여자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모든 면에서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현대적인 남성상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여성을 숙녀 대접하고 앞장서서 처리하고 계산을 치르는 전통적인 남성상을 기대한다.

고2 여름방학

그냥 머리감기 귀찮았을 뿐인데

  내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돌아다닐 때, 사람들이 자주 나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짜증을 내며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나 자신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여자로 살고 싶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나마 여자로 사는 게 좋았다. 남자이기 때문에 굳이 체벌 당하는 것도 싫었고, 바지만 입고 치마는 못입는 것도, 남의 돈버는 기계가 되고 싶지도, 장남의 부담을 지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군대가기는 정말 싫었다.
  소위 페미라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말은 청산유수로 하면서 계산할 때만 되면 쏙 도망가 버리면 그거야 말로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 아닌가? 혹시나 계산은 더치로 해놓고 나중에 욕먹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남자는 체면때문에라도 자신이 계산을 하겠다고 해야 한다. 멋진 여자라면 "내가 왜 당신한테 밥을 얻어 먹어야 하는데? 내가 거지야?" 까진 말을 못하더라도, "내 밥은 내가 산다. 넌 커피나 사라"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차.. 요즘엔 커피 값이 밥값보다 더 비싸기도 하지.. 밥은 네가 사라, 커핀 내가 산다 그래야 하나.)

  아무튼, 남자도 여자도 읽어볼만 하지만 특히 여자가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남자가 쓴 '남자는 불쌍합니다' 책은 왠지 엄살 떠는 것 같지만 여자가 쓴 '남자는 불쌍하더라고'라면 좀 그럴싸해 보이니 말이다. 또, 이 책은 손가락질 하면서 동시에 안아주기가 힘들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남성 운동을 해온 폴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남성이 역기능을 할 때 최대 피해자는 여성들입니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에요"
 남성이 치유되면 여성에게 이득이 있다. 그러려면 여성들이 남성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자임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겠지만. 그뿐 아니라 (인정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부장제도에서 여성들이 공동결정자였음을 인정해야 될 것이다. 나쁘게 보면 진짜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예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폴의 관점으로 보면, 남녀 모두 '제도가 나쁘다'는 점에 동의해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 노릇을 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멍에를 스스로 짊어진 꼴이니까. 누가 '네 잘못'과 '내 잘못'이라고 동시에 외치면서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누가 군림하면서 동시에 반항할 수 있는가?
  남성들이 백악관 잔디밭에 모여 공개석상에서 울 권리나 잃어버린 아버지의 사랑을 달라고 요구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것들은 심리치료를 받아서 해결할 문제들처럼 보인다. 사적인 문제들이므로.
  하지만 남성들의 사생활은 우리의 사생활이기도 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폴의 의견이 옳다. 남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가졌다면, 그들의 우울을 치유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또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듯, 그것은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일이다(개인적인 일이 정치적인 일이다)

  최근 동생이 군대를 가니마니, 휴학을 하니마니 하면서 가족들이 와글와글 걱정이다. 먼저 동생(의 자율)을 믿어 준 다음, 동생이 잘하게 되는 것이 나을까 동생이 잘하게 된 다음에 동생을 믿어 주는 것이 나을까? 어린애를 어른 대접하면 어린애는 어른인척 어른스럽게 군다. 여자 눈에는 빤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만 그래도 남자를 믿어주면 남자는 뿌듯해 한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노여워 해서는 안된다는 푸시킨의 시처럼, 아직 슬픈 이 날을 참으며 믿는 것이 나은 일인지 아직은 확신 할 수 없다. 그래도 다른 수가 없다면, 일단은 믿어 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