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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_설

햇빛 노란 텅빈 거리의 꿈

by Desmios 2011. 2. 13.
Pentax K20D, F8, 1/1500초 ISO 400, 55mm(18-55)
2010-02-26, 수원화성 성벽

같은 삶을 반복해서 다시 사는 꿈을 꾸었다. 꿈을 깨기 직전에는 지금까지 삶아왔던 모든 삶들이 한 눈에 흘러가며 나를 아련하게 했다.

강압적이고 아버지였던 나는 가족 식솔을 이끌고 세계 멸망의 날에 도망 다니다가 가족들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순간에 같은 삶을 다시 살 기회를 갖게 되었다. 비슷한 삶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었고 가족들을 억압했다. 다시 사는 삶속에서도 또다시 멸망의 날이 왔고, 나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가족을 잃어 버리고 혼자가 된 나는 늙어가며 가겟방 아줌마와 재혼을 하기도 했다. 지저분하고 술에 취해있는 괴팍스런 늙은이. 그런데도 나는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가졌다. 이번에는 좀 더 잘 살아보고 싶었다. 삶이 반복 될 수록 점점 말을 듣지 않는 가족들, 어차피 또다시 멸망할 거라는 알고 있는 미래. 좀 더 여유있게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이전 삶에서는 나를 피하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재혼하는 가겟방 아줌마의 장성한 아들은, 내가 그와 교환하기로 한 선물을 포장하지 않아 당혹스러울까봐 포장한 선물과 포장하지 않은 선물 둘을 모두 준비해놓는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같은 삶을 세번이나 살아보고서야 그의 자상한 배려를 알 수 있었다. 같은 삶을 반복해서 산다고 해도 좋았다. 큰 멸망의 날 이후 텅비게 된 노란색 거리도 애틋했다.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고 해도 나는 세번이나 연속된 삶 이후에서나 겨우 삶을 깨달았다. 어차피 시간이 흘러가고 우리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오늘 새로 알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11시 쯤 눈이 떠졌다. 렘수면 도중 깨게 되는 잠은 어리둥절하다. 몸을 움직이면 희고 가는 먼지처럼 꿈이 날린다. 꿈 속의 아련함이 현실에 묻어져나와 나는 조심스럽게 집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상이 잘 흘러가고 있는지, 나 없는 사이에 혼자 망해 버린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