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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_설

셀카봉과 유행의 민망함을 견디는 거울에 대해서

by Desmios 2015. 1. 2.

  도무지 왜 유행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유행할 때가 있다. 주름진 발토시가 그러했고, 발목 양말, 귀두컷, 노스페이스 패딩과 떡볶이 단추 코트, 스키니진, 이제는 셀카봉이 그러하다. 하지만 이런 유행을 함부로 비웃는 것은 매우 위험한 단견이다. 


사진은 90년대의 가수 SES의 사진에서 오려낸 발토시 출처: program.interest.me/tvn/reply1997/20/Board/View?b_seq=68


초등학생 때 발토시가 유행했었는데 저 늘어진 아빠 양말 같은 하얀 천쪼가리를 대체 무슨 연유로 껴입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열변을 토했다. 도무지 꺼지질 않는 유행의 불길 속에서 구원받질 못하고 슬쩍 한다리 걸친 나는, 미리부터 발토시를 하던 친구에게서 "안입는다매!" 하고 놀림 받은 것이 분해 급식실에서 엉엉씩씩 울어버린 것이다. 너무 큰소리로 자기 주장을 하면 나중에 태도를 바꿨을때 귀찮아 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친구가 내가 울어버릴 정도로 "안입는다매"를 외친 건, 내가 너무 큰소리로 신랄하게 발토시를 비웃은 까닭도 있겠지만, 유행을 따르고 있는 사람에게 유행을 따르는 것이 바보 같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생이되고 나서 오래오래 이어지던 닭다리 스키니진에 드디어 굴복해 첫 스키니진을 사게 되었을 때 깨달았다.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어 남들의 손가락질을 견딜 수 없다면, 손가락질이나 하지 말자 나중에 내가 뒤늦은 막차에 올라탔을 때 내가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한다.

 


  문제는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요즘 또 내가 손가락질하며 쿡쿡 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셀카봉! 셀카봉이라니! 헛웃음이 팡팡 나온다. 왜죠? 왜죠! 도대체 셀카봉이 얼마나 편하고 잘 찍히면서 셀카 아닌 것 처럼 나오기에 너도나도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일까.


"셀카봉"이라고 구글링해서 찍은 사진인데 출처를 올렸다가 광고로 오인 받는게 아닌가 싶어서 함부러 출처를 올리기가 좀 꺼려진다 그래도, 출처는 : http://hotdeal.koreadaily.com/ 요기


  사실은 셀카봉의 문제가 아니다. 셀카봉은 셀카를 더 잘찍기 위한 몸부림과 상업적 이해가 합쳐져 나온 웃기지도 않은 제품일 뿐이고 내가 궁금한 것은 셀카봉이 유행하게 된 이 시대의 바람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 셀카봉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왜 셀카봉을 샀느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이유 중에 '데이트 할 때 쓰려고요', '완전 유행이라서요', 이외에 그럴싸 했던 이유는 "멀리 배경과 함께 찍을 수 있어서", "가족 사진 찍기 좋아서" 였다. 얼굴만 와방 크게 나오는 셀카는 이제 그만이라는 소린 것 같은데. 요컨데,

  "저기요. 죄송한데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를 안하고 내가 예쁘게 나올 때까지 줄창 찍을 것이라는 말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걸기 싫고 내 카메라를 훔쳐 갈 것 같아서 무서운 이유라면 사람 관계의 삭막함에 대해 개탄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귀찮게 굴지 않으면서 개인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유라면 개인주의의 만연함에 대해 걱정해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냥 잘나올 때까지 찍기 편하려는 이유라면? 그렇다면 나는 거울을 탓하겠다.

 

  데뷔한 연예인이 성형도 안했는데 어째 점점 예뻐진다면 화장술의 변화도 이유가 있겠지만, 더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찍히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따금씩 셀카를 업로드하면 주위에서 누구냐! 너 아닌 것 같아! 이 사기는 뭐냐 등등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카메라를 어디에 띄우고 눈은 어떻게 뜨고 턱을 돌리느냐에 따라 나의 모습은 돼지 삼겹살이 되기도 하고, 눈 큰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셀카는 찍으면 찍을 수록 익숙해지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찍힐 수 있다. 사진이 되었을 때, 카메라의 렌즈에 나의 어느 부분을 들이대야 내가 연출 할 수 있는 가장 날씬한 모습이 나올지 알아간다. 사진에 나온 나는 나보다 뛰어나고 곧 나와 괴리된다. 나 이상의 존재가 된다. 거울에 비친 내가 온전한 내 모습이 아니고, 내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내 모습인 것 처럼 (그래서 좌우 반전되어 보이는 거울을 보면 본인이 못생겨 보인다 한다) 셀카역시 내가 만든, 모습이다.

 

  보다 더 아름답게, 보다 더 보편적인 미의 모습에 걸맞도록 화장하고 옷을 입는 것 뿐 아니라 내가 유행에 뒤쳐지지도 않았고 젊고 아름다우며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불특정 다수에게 증명하고자 셀카봉이 필요한 것이다. 셀카는 내가 찍는 나의 모습이면서도 나를 위한 사진이 아니다. 기묘하게도 사진은 인터넷과 결합하며 추억의 회상수단 이상의 존재로 승극했다.

  나 역시 내가 셀카 찍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지만 이따금씩 셀카를 찍는다. 입도 벌려보고 고개도 갸웃거려 본다. 렌즈를 투과한 내 모습이 사랑스러운 것이다. 때로는 부끄러워진다. 아이고 이런 머리를 하고 돌아다녔다니! 화장이 번졌잖아! 등등, 셀카는 때론 나를 부끄럽게 하는 거울의 상이 된다. 나를 비추는 거울이면서도 오직 나에게만 보이지 않는다 나의 거울이 많은 사람에게 보이게 된다.

 

몇명이 거울을 붙잡으니 마귀로 변하는자 있음에 마귀를 비추지 않고 만들어 내니 곧 거울은 가벼이 봐야 할 것이며 열중할 것이 아니더라[각주:1]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대사 중 사이토 료쿠(斎藤緑雨), 「霏々刺々」


 

  나의 결론은, 셀카봉이란 유행의 민망함을 견뎌서라도 아름다운 나를 보기 위한, 그리고 보게 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좀 더 멀리까지 비치는 거울을 준비해 다니면서 최선의 한 장을 위해 노력한다. 짝짝짝



  + 이 글을 쓴 건 한창 셀카봉이 대 유행이던 2014년 9월 28일이었는데 그후 과연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편하게 잘나오긴 하더라. 워크샵 마지막 날 미리 단체사진을 생각하고 셀카봉을 들고 온 사람은 무리의 영웅이 되었다. 

 


  1. 참조출처: http://blog.daum.net/seaoid/1154673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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