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는즐거움/이지적 성

에스테 빌라 - 길들이는 여자들, 길들여진 남자들

by Desmios 2011. 2. 27.
길들이는 女子들, 길들여진 男子들 - 8점
에스테 빌라 지음, 조선희 옮김/지향

  정말 끔찍하게도 읽기 힘든 책이었다. 나는 "이건 내 얘기가 아니야"라는 식의 방어적인 태도로 책을 읽는 것을 지양한다. 그렇게 읽으면 굉장히 편하게 술술 책을 넘길 수야 있지만 그래서 도대체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라곤 해도 정말 내 얘기로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승질 뻗치는 책이었다.

  여성 상위 시대에 어떻게 하면 남자를 잘 길들여서 부려먹을 수 있을까 하는 달콤한 내용이 아니라, 1971년에 출판되어 '이미 여자들은 남자를 부려먹고 있다'라는 따끔따끔한 내용이다. 내용이 하도 충격적이어서 친구들에게 얘기하고 다니다가 이 책을 한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굉장한 낱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낱말을 남자인 친구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런 못된 말은 어디서 배워왔냐고 그러더라.)


바로 이런 내용이다. 보슬아치

  인터넷에 찾아보면 거의 여성 증오 수준으로 보슬아치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뭐, 여자가 남자를 키만 보네 운운 하는 것과 비슷하게 사실 남자도 여자 얼굴만 보면서 운운 한다. 그런 걸 보면서 까마귀 나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떤 남자가 안티기독교카페에 아주 분노에 차서 교회다니는 년들도 된장녀에요! 하는 글을 보고 폭소를 터트렸던 기억 때문이다. 아 보니까 또 재밌네.



  이 책은 여자들이 남자를 부려먹기 위해 만들어낸 여러 전술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것은 나로하여금 굉장한 모욕감과 짜증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그 것을 모두 거짓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못생겨서 남자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버려서 '나는 그런 여자가 되지 않겠어!'라고 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 못생긴 년은 지가 벌어 먹고 살아야지 나도 공부나 하자 시발)


  책을 읽으며 내가 왜 이렇게 불쾌한가를 곰곰히 생각해 봤을 때,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사진 동아리 전시회 때 내가 시키는 일을 쪼또 안하고 뺀돌대던 개뇬들.


  전시 설치 때문에 조명 작업을 해야 했는데, 좀 엉성하긴 하지만 수작업으로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나도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알아서 배워가지고 시켜보니 남자도 여자도 잘하는 애들은 잘하고 못하는 애들은 못하고, 못하지만 열심히 하는 애들을 데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몇 뇬들이 시킨 걸 안하고 뺀돌뺀돌 수다를 떨고 있길래 아- 전선 전기엔 영 취미가 없나보다 하고 다른 일을 시키다가 나중에는 진짜 쓸 데 없는 쓰레기 줍기를 시켰다. 그런데도 내가 한눈만 팔면 어찌나 놀아재끼는지 도대체 머릿속에 똥 밖에 안들어있나 대학이나 들어온 뇬들이 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열이 뻗쳤다. 그때는 잘 이해를 못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뇬들은

 "어머, 그런 일을 어떻게 해. 일은 남자들이랑 깐깐한 너나 하면 되는 거지 나는 예쁘고 키도 크니까 적당히 뺀돌대면서 우리 쫓아다니는 남자애들이랑 깔깔 대기만 하면 돼. 내가 이런 추한 작업하러 대학 들어온 줄 알아? 난 고고하게 앉아 있다가 괜찮은 남자 작업걸어가지고 결혼해야 한단 말이야"

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나보다(ㅋㅋ) 이런 여자애들을 더 따라다닌다. '나는 바보에요'라는 게 그렇게 좋은 가보다.(책에서는 '자기비하 전법'이라고 지칭한다) 아주 귀여워 죽겠는가 보다. 책 한 줄 읽을 시간에 거울이라도 한 번 더 보는 이런 애들은 아마 나보다 시집 잘가서 집에서 물 한 방울 손에 안묻히고 잘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마음이 계속 든 이유는, 나 역시도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한 여자의 이런 악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에 기인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좀 어려운 일은 남(자)들한테 시켜서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숫자엔 젬병이라 보고 또 봐도 도대체 뭐가 싼 것이고 시세가 어느정도 되는지를 잘 모르겠다. 계속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돌아다니면서 중고시세, 새 제품 가격, 중고 전문 사이트 가격, 개조 등등을 찾다가 도무지 골이 터질 것 같아서 남자인 친구에게 gg*help를 요청했던 것이다. 속으로 "제기랄 꼭 이럴 때 남자친구가 없어가지고-_- 있을 때 좀 시켜 먹을걸"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혼자서도 잘해요'를 보고 자란 것과 상관 없이 좀 힘들면 남(자)에게 맡기고 싶은 빌어먹을 속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덕분에 지금은 한달 째 중고나라만 보고 있다. 제길 괜찮다 싶은 거엔 사람들이 너무 빨리 개떼처럼 몰려 들어..)

  결국 책의 마지막까지도 도대체 왜 이런 글을 쓴 것인가 하는 이유, 혹시 지금까지 다 뻥이었습니다 하는 반전 같은 것은 없었다. 책은 그저 여자란 이런 빌어먹을 종족입니다 하고 설명할 뿐이었다. 1971년 이후 한 4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여자들은 ㅂㅈ를 이용해서 남자를 등처먹는다. 나도 이미 늦은 셈이지만 화장이라도 열심히 하고 다니면서 대기업 들어간 동아리 형들하고 친하게 지내야 할까? 귀찮다.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면서 "내 밥은 내가 산다"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