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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앨런 맥팔레인 -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by Desmios 2011. 3. 1.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 - 6점
앨런 맥팔레인 지음, 이근영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어머니가 나에게 선물해 주셨던 공지영씨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나왔던 책이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 하면서 한 번 더 읽어 보게 되었는데 내용이 괜찮을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 봤다. 내가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말하자 이미 그 책을 읽어 봤던 한 친구는 "좋긴한데, 많은 내용을 얕게 말해서 생각보다 별로였다."라고 말해주었다.

  친구의 말 처럼, 여러가지 내용들에 대해 깊은 이해 보다는 어찌보면 피상적일 수 있는 지식들을 던져준다. 문화인류학자들의 오랜 전통인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기'의 일종으로, 영국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들의 예를 들어 네가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가르쳐주는 것들 말이다. 그렇지만 이 많은 얘기들을 자세하고 깊이있게 썼다면, 그 것들을 다 읽었을 때 즈음 릴리는 저자인 맥팔레인 할아버지 만큼의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딱, 이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손녀에게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할 정도면 충분함.

  나도 내가 책바라지하는 내 새끼들한테 좀 읽게 하고 싶은데 요즘 책에 관심들이 없어서 요원하다.


<독서메모>

폭력에 대한 편견
p.54
  폭력이 없는 인간관계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부모들은 물리적인 힘은 아니더라도 상징적 폭력을 사용해 자식들을 가르친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입 다물고 부모 말에 복종하라고 명령한다. 또한 선물을 주거나 지나친 애정 표현을 하거나 죄의식을 유도하는 간접적인 폭력을 통해 자식들을 통제하기도 한다.
  부모의 위협이나 칭찬 뒤에는 언제나 힘이 담겨 있다. 그 힘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내재된 불평등의 한 요소이며, 언제라도 적절한 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거나 부적절하게 '남용' 될 수 있다. 균형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나는 근래 가족들, 이라고 해봤자 부모님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꽤 짜증이 나있다. 물론 나 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나에게 짜증이 나야 겠지만, "너랑 동생 때문에 나랑 네 엄마가 요새 낙이 없다"라고 하시는 데 "저도 엄마아빠 때문에 힘들어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관계의 내재된 불평등이겠지.

  '상징적 폭력'에 대해서도 할 말이 아주 많은데, 우리집에서 주로 사용되는 상징적 폭력은 밥먹고 누우면 소가 된다는 옛날 얘기가 아니라, 부모말을 듣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옛날 얘기다. 혼날 때마다 하도 성경 얘기를 많이 들어서 나는 내가 지금 부모님한테 혼나는 것인지 하나님한테 혼나는 것인지가 헷갈렸다. 이제는 우리 사이에서 좀 빠져주세요 하고 싶은데 내 믿음이 그렇게 못 믿으시겠는지 절대 포기 하실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아직도 기도하면서 가족들(=나)에 대한 불만을 쓸쩍 껴넣는데 내가 뭘 어쩌겠는가 그만 좀 해달라 하면 내가 기도하는 거지 너한테 얘기한거냐 할 게 틀림 없을텐데 말이다.

  하도 오래 떨어져 살아서 가족이라는 것 자체에 너무나 큰 환상을 품게 된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본다. 아무튼 간에 나를 받아줄 곳이 가족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 환상이라면 말이다. 뭐, 어찌되었거나 나름대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 근근히 연명하는 입장에서, 아마 난 요걸 빚이라고 생각하고 나이 들어서까지 쩔쩔 맬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된 수많은 경위 사이에선 '지당 그러해야 한다'라고 주입된 가정교육이 한 몫을 차지할 것임이 틀림 없다.
  그러니 나는 나중에 엄마가 나이 드신 후 관광버스 타고 어디에 놀러간다고 하셨을 때, "남자가 몇 명이나 가는데?"하고 물어본 다음에 남자가 여자보다 많아서 가면 안된다고 하는 농담을 할 수 있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엄마가 무슨 그런 게 어디있냐고 하면 "엄마도 나 대학생 때 엠티에 남자가 여자보다 많다고 못가게 했다"는 얘길 꼭 해줘야지. 할 수만 있으면 "가고 싶으면 엄마가 돈 벌어서 가"하고도 싶겠지만 그 때 역시 엄마는 노후 자금과 연금 때문에 나보다 부자일게 틀림없으므로 요원한 소원이다. 


'악의 축'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p.185
(전략)  그러나 훗날 현재의 상황을 돌이켜보면서 지금의 공포 역시 과거의 마녀사냥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다시 말해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국가의 행동이 오히려 국가가 수호하려는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고 결론내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메가마인드

메가마인드의 히어로와 안티히어로 "이봐 친구. 모든 음에는 양이 있어. 악이 있다면 선이 일어나 맞설거야."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을 들으며 적어도 나는 서양인들이 '악의 축'이라는 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반 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 나-동양인 에게 있어서 '악'이란 아주 모호한 것이다. 우리 감성의 지옥의 염라대왕은 나쁜 사람들의 행적을 보고 얼마나 지옥에 있을 것인가 처리하는 공무원 같은 사람이고, 죽은 사람을 데려오는 저승사자 역시 '개똥이 68살, 소똥이 70살' 이라고 적힌 책을 들고 다니면서 죽은 사람 길 잃지 말라고 안내해주는 갓 쓴 심부름 꾼이다.
  음양 사상을 이해하는 동양인에게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라는 말은 쉽게 와닿는다. 절대적인 '악'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지금 상황에서 그러해 보이는 것 뿐이라는 것을 다들 이해 할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환호를 울리며 최신 유행인 음양사상에 심취해 안티히어로물을 자꾸 만들어 내는 가 본데 '악의 축'운운 하는 사람들은 문화인류학을 좀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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