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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윤용인 - 어른의 발견

by Desmios 2011. 2. 3.
어른의 발견 - 4점
윤용인 지음, 양시호 그림/글항아리

  책장 한장한장이 땀내나는 근육질 아저씨 옆에서 들어올리는 덤벨같이 안 넘어간다면, 그냥 그 책을 덮어 버리는 게 나을까 참고 계속 뇌 운동을 하는 게 나을까? 에스테 빌라의 '길들이는 女子들, 길들여진 男子들' 때문에 독후감을 못쓸 지경이었다가 결국 슬며시 다른 책으로 옮겨왔다. 오늘 하루만에도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애타게 날 기다릴텐데 날 자꾸 짜증나게만 만드는 너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이유는 없겠지, 널 사랑하니 보내줄게 으흥

  아무튼 간에 바로 저 짜증나는 책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 그동안 독후감을 올리지 않은 변명이다. 그에 비하면 '어른의 발견-윤용인'은 딴지일보 출신 기자들의 글이 대부분 그렇듯 (박소현 - 쉿! She it! 이전 독후감 링크) 글맛이 좋다.
  저자 자신이 말햇듯이 이것은 어려운 심리학 도서는 아니다. 지금 이 시대의, 한국, 어른들에게 맞는 아주 쉬운 심리학적인 얘기들을 쏙쏙 찾아 얘기 해준다.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얘기가 가득하다. 부부, 아이, 집안일, 별거, 외로움, 욕망과 같은 얘기 말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나는 아직 '공부와 이데올로기, 연애와 사회 문제로 고민하'는 이십대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슬픔에 가슴 깊이 공감하진 못하겠다. 8살에 봉순이 언니를 읽고 밍숭밍숭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중 두 가지는 좀 생각해볼만 했다. 피해의식과 우울증이다.


  피해의식 (pp204-205)

  나는 성별의 차이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다. 원인을 생각해보면 두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첫번째는 외할머니의 손자 사랑-성차별과 남동생의 고추값에 관한 기억이고 두번째는 초등학교 6학년때 시골로 전학오면서 생긴 피해의식이다. 고추값은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테니 그 때 얘기하도록 하고, 전학과 관련된 피해의식은 분명 피해의식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놓을 수가 없다.

  내가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그 마을에서는 나와 같은 나이의 남자애가 이사를 나갔다. +1-1=0 이었지만 그 동네 여자애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전학이라는 것은 1학년때부터 똑같던 자신의 학급 번호가 바뀌는 귀찮은 일임과 동시에 (어쩐지 오자마자 내 생일을 물어보더라, 그 학교는 생일 순으로 번호를 매겼다) 안그래도 쓸만한 남자 수가 부족했던 13살들의 교실에 먹이감은 줄어들고 경쟁자는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나는 왕따를 당하면서 '내가 남자였더라도 여자애들이 나를 이렇게 괴롭게 했을까' 생각했고, 말하긴 부끄럽지만 아직도 나와 자리를 바꿔 전학간 그 남자애를 싫어하고 있다. 부모님이 서로 아는 사이라 가끔 만날 기회가 있는데 한 마디도 안한다. 그새낀 분명 어리둥절 할테지만 이 피해의식은 언제쯤 괜찮아 질지 모르겠다. 


  우울증 (pp.207-211)

  삶에 대한 암울함, 스스로에 대한 움츠러듦, 낙관도 희망도 아무것도 가질 것 없는 물에 젖은 솜과 같은 무기력감, 눈만 감으면 수렁으로 빠져드는 허무감의 극치, 세상에 가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회의감, 그런 모든 것에 그저 손을 놓고 싶다는 잠과 죽음에의 유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깊은 마음의 병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힘든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  p.209

   작년(2010) 말부터 우울증 때문에 일년에 한번 빨까말까 했던 베갯잇을 (더러워서 죄송함다) 말라서 가져오기가 무섭게 다시 빨아야 했다. 이 우울증은 사실 제작년(2009)부터 시작된 것인데 1년동안 '우울하지 않은 척증'을 앓다가 결국 무너져 버린 것이다.
   늦은감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내 우울증을 알아차리고 우울증 상담도 받고 사람들한테 나 우울하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우울하다는 나에게 '운동이라도 좀 해봐'라고 해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는 대꾸할 기운도 없어서 말았지만 내가 그때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럴 힘도 없는 게 바로 우울증이네 이 사람아" 나는 다음달부터 수영을 다니기로 했다. 지금은 우울증이 좀 나아져서 더 괜찮아지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창 우울증이었을때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좀 힘을 내서 시도해보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