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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_설

깨어진 신뢰를 위해 치러야 할 값

by Desmios 2015. 2. 27.


PENTAX K20D, F2.8, 1/30초, ISO 800,  40mm

2010-7-22

포포로(www.poporo.co.kr) 트루디자인에서 편집



깨어진 신뢰를 위해 치러야 할 값은 얼마인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드라마를 가지고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다. 지극히 평탄한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드라마가 존재한다. 그 어느 드라마도 남들과, 모호한 평균에 비해, 모자라다거나 더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머릿 속에는 특정한 어떤 <드라마>가 존재한다.


  흔히 막장이라고 지칭하는 어떤 <드라마>의 스토리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종의 롤모델에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우리는 그 사람의 인생을 드라마틱하다고 칭한다. 아무도 지키지 못하고 지킬 수도 없는, 그 애매모호한 평균치에서 얼마나 가깝고 또 멀어지는가에 따라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받거나 우러러 받게 된다.



  나는 내 인생을 <드라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 각자는 다들 너무나 특별하기 때문에 그 특별함이 서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 각자가 유니크 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내가 무엇하러 나의 드라마를 포장해 다른 사람에게 내어 보여야 한단 말인가. 

  내가 왜 비둘기를 싫어하게 되었는지, 내가 가나니 고개에 앉아 물감을 찍어 누구를 그렸는지, 안개가 가득한 찻길을 운전하면서 나는 왜 울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해서 무엇 하는가. 다들 나름 아름다운 기억들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텐데. 

  각각 팔걸이에 몸을 기댄채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앞자리의 두 여자. 의자에 기대서 창문 밖을 한숨처럼 바라보는 흰머리의 할아버지. 코트 깃을 세우고 열차 호수를 확인하며 왼쪽 발을 약간 끌며 걸어가는 아저씨. 굳이 나의 드라마가 남들보다 더 흥미로울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들 내가 모르는 어떤 드라마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는 그 모든 드라마들에 묻고 싶다. 깨어진 신뢰를 위해 치러야할 값이 얼마이냐고. 당신들은 무엇으로 찢어진 마음을 그러모았느냐고. 왜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가슴을 부여잡느냐고, 심장에 약간 오른쪽 척추의 약간 왼쪽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자꾸만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리고 싶어 하느냐고.


  말은 함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뢰가 ‘깨어졌다’라는 것은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그 깨어진 파편이 더 닳기 전에 나는 신뢰가 깨어졌음을 알았다. 이미 깨어진 신뢰를 알아채지 못한 채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면 모서리들은 시간이 흔들어 놓는 진동에 덜 날카로와지고, 깨어지기 이전의 모습으로 모아 붙였을 때 닳아서 꼭 맞물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이전의 흠 없는 모습으로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이를 복구하기 위해, 더 많은 접착제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 한다면 나는 더욱 비참해 보이겠지. 다시금 묻고 싶다. 어떤 접착제가 필요할까. 끝없는 사과, 아픈 비참함, 달콤한 복수, 만병통치약 돈, 공평한 시간. 무엇이면 가능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이 세상의 많은 드라마들에게.



20130124 일기    

20150227 편집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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