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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도널드 매케이그 -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by Desmios 2015. 2. 3.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 4점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레드박스


  한마디로 실망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은 독자가 이 책에서 기대할 것이 뭐란 말인가. 레트 버틀러 입장에서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일까, 그래서 레트가 떠난 뒤에 스칼렛에게 내일의 태양이 떠올랐는가 하는 것일까? 난 단연코 후자를 기대했다. 마가렛 미첼(마거릿 미첼)이 단명하는 바람[각주:1]에 알 수 없었던 그 뒷이야기를 누군가 써줬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역시 대작의 속편을 타인이 집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는가 보다. 


  이제 어떻게 되는가!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이게 뭐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뒷이야기는 안나오고 레트의 일생 이야기가 한세월 나온다. 제목이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이라 그랬는가보다. 전부 5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마지막만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다.


  사실, 레트의 과거사를 재창조하거나 레트가 떠난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의 스토리는 개연성이 맞지 않는다던가 말도 안된다던가 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 글을 쓴 도널드 매케이그(Donald Mccaig) 작가의 상상력이고 그의 일이었으니 독자인 나로서는 투덜거리고 싶지 않다. 

  내가 무엇보다도 실망했던 부분은 이 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캐릭터 만을 따왔다는 점이다. 마가렛 미첼 특유의 묘사와 글쓰기 방식이 나타나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다. 오로지 사건과 사건과 사건이 이어질뿐, 묘사가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있으면 남북전쟁 이전 귀족층의 삶이 영화 처럼 마음에 그려진다. 스칼렛의 옷자락이나 눈썹의 미세한 떨림, 헌신과 충성심 그리고 아름다움이 절절히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음을 말로 한다 해도 그 마음이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냥 그랬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단적으로, 스칼렛이 레트와 처음 만나는 부분을 쓴 두 글을 보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권, pp.154-155


  잡담을 하고 웃어 대며 집 안과 마당을 번갈아 재빨리 살펴보던 그녀는, 거실에 혼자 떨어져 서서 느긋하고 교만한 눈초리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그 눈초리는 한 남자의 눈길을 끌었다는 여자다운 기쁨과 드레스의 가슴이 너무 노출되었다는 거북한 감정이 뒤엉킨 기분을 강력하게 자극했다. 그는 꽤 나이가 들어서, 적어도 서른다섯 살은 되어 보였다. 그는 키가 크고 몸집이 건장했다. 신사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근육이 지나칠 정도로 단단한 이런 남자를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스칼렛은 생각했다.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자 그는 짧게 다듬은 까만 콧수염 밑에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동물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해적처럼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햇볕에 탔고, 눈은 강간할 처녀나 도망치려는 범선을 가늠해 보는 해적의 눈처럼 까맣고 대담했다. 그녀를 쳐다보고 빙그레 웃는 그의 입가에는 냉소적인 즐거움이 서렸고, 얼굴에는 냉혹한 무자비함이 드러나서, 스칼렛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 눈초리를 받으면 굴욕감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수치감을 느끼지 않는 자신이 못마땅해졌다. 이 남자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그녀는 몰랐지만, 그의 시커먼 얼굴에서는 훌륭한 혈통의 인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런 인상은 매처럼 가느다란 코와, 두툼하고 붉은 입술과, 높직한 이마와, 미간이 넓은 두 눈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전혀 미소를 짓지 않은 채 억지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그는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섰다. 

「레트! 레트 버틀러! 이리 와요! 조지아에서 마음이 가장 쌀쌀한 여자에게 인사나 하시죠.」 

레트 버틀러라고? 어쩐지 무슨 재미있는 소문과 연관이 되어 귀에 익은 이름처럼 들렸지만, 그녀는 마음이 애슐리에게 쏠려 있었으므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pp.136-137


  레트의 시선이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에게로 향했다.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세상에."

  사실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 턱은 뾰족하고 입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굳게 다물고 있었다. 보통 숙녀들처럼 뜨거운 햇볕에 피부를 드러내지 않아 유난히 하얀 살결과 예사롭지 않은 몸동작. 레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친밀하면서도 태연하게 어느 젊은 남자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여자는 레트의 시선을 느끼고 눈을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녀의 당황한 초록색 눈이 레트의 검은 눈과 마주쳤다. 하지만 이내 진저리난다는 듯이 고개를 휙 내리고는 젊은 남자와 다시 시시덕거렸다.

  불안하게 다가오는 전쟁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전쟁이 가져올 황폐함도 까맣게 잊었다. 레트 버틀러에게 치유의 샘처럼 희망이 솟구쳐 올랐다.

  "어떻게 이런!"

  레트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나랑 똑같은 여자야!"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자 때문에 바보짓을 해본 지가 언제였더라?

  레트는 곧바로 농장 저택을 돌아 바비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울창한 나무 아래 여기저기에는 벨기에 리넨을 깐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영국제 은그릇과 프랑스제 자기가 놓여 있었다. 그가 반쯤 찬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 하인이 식사와 와인 잔을 가져왔다. 다시 그 여인에게로 생각이 쏠리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와인을 두 잔째 들이켰다.


  이 짧은 단락만 보더라도,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에는 묘사가 없다. 상황 설명과 대사 뿐이다. 저 놈의 "영국제 은그릇과 프랑스제 자기", 은그릇에 대한 언급이 책 여기저기에서 나오는데 그 식기들의 심미성, 귀족적인 성향, 아름다움은 전혀 없이 그저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은그릇'일 뿐이다. 은그릇은 아무런 남부의 상징이나 매력이 없이 정말이지 그냥 책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놋그릇이라고 바꿔도 누구도 문제삼지 않을 지경이다.


  여러모로 나를 불쾌하게 만든 이 책은 옮긴이 소개와 책 뒷면 날개의 "냉소마저 매혹적인 남자, 레트 버틀러의 7가지 매력!"으로 화룡정점을 찍었지만 그마저 옮기진 않겠다. 나도 이 두꺼운 책을 욕하며 읽었으니 나 말도 다른 사람도 좀 당했으면 좋겠다는 나쁜 심보다. 도대체! 도대체 누가!



  1. 1900년 미국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에서 태어났다. 애틀란타는 남북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라 미첼은 어린 시절부터 전쟁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10년간의 집필 기간을 거쳐 1936년에 발표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전 세계에 번역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단 한편의 소설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미첼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다음 작품을 쓸 수가 없었다. 1949년 교통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은 미첼은 가볍게 쓴 글조차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출처: 알라딘 책소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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