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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이브 A. 우드 - 심리학, 배신의 상처를 위로하다 ; 용서할 수 없으면 용서하지 말라

by Desmios 2015. 2. 25.
심리학, 배신의 상처를 위로하다 - 4점
이브 A. 우드 지음, 안진희 옮김, 김한규 감수/이마고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의 시간은 어쩐지 좀 모호하다. 졸업 이후 몇 년이 흘렀는지, 내가 지금 몇 살이고 그동안 뭘 했는지를 생각하고 있자면 머릿속에는 '으으 대학원 싫어'만 맴돌 뿐 구체적으로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거나 학교-집(-피시방)만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본다.

  구남친과 사귀었던 때가 잘 생각나지 않는 것도 아마 같은 이유일 것이다. 뭔가 했던 것 같기는 한데, 언제부터 사귀었는지 뭘하고 지냈는지 언제 헤어졌는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대학교 졸업 이후 '으으 대학원 싫어'만 생각 나는 것 처럼, 그 녀석(사실 새끼라고 쓰고 싶지만 참았다. 어 말해버렸다ㅋㅋ)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욕지거리와 함께 짜증난다는 감정뿐이다. 


  구질구질 이랬네 저랬네 하고 썰을 풀기엔 블로그가 페이스북과 연동되는 바람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엮여 있어서 할 수가 없다. 몇 년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냐고 말한다면 그래 남았다. 책 제목과 같은 '배신의 상처'가 아직 남았다. 



iPhone 4S, F2.4, 1/15초, ISO 800,  4.28mm

2012-05-08, 아마도 동호대교


 그래, '아직' 남았다. 

 몇 달 전에 웃긴 일이 있었다. 동아리 친구를 만나러 졸업한 학교에 가고 있었는데 친구가 카톡으로 지금 동아리방에 그 구남친이 와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 진동하는 만두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혼미해 구남친이 있든지 말든지 만두 생각 밖에 안났다. 간신히 학교에 도착해 치킨이 배달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치킨도 구남친도 동방에 없어 나는 치킨타령으로 친구나 갈구며 치킨을 갈구했다.

  오라는 치킨은 안오고, 치토스를 든 구남친이 들어오더니 흠칫하곤 할 일이 있다는 듯 동방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문제는 이 치토슨데, 하고 많은 과자 중에 치토스가 아니었다면 웃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구남친이 두고간 치토스가 먹고 싶어졌던 것이다. 나는 어쩌다 걔를 마주치면 눈도 안마주치고 인사도 안하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인데 홀랑 치토스를 집어 먹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참는 와중에 다른 형이 동방에 들어오더니 "어 치토스네?"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챱챱 먹었다.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이 와르르 무너지며 나는 형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단 한개만 달라 그랬다. 그래도 내 손으로 집어 먹는 건 아니니까 좀 덜 캥길줄 알았지.

  이쯤되면 내가 뭣 때문에 이 얘기를 웃기다고 했을지 대강 감이 잡힐 것이다. 형이 "많이 먹어 먹어"하면서 한주먹 주길래 "아 한개만요" 하면서 실랑이를 하며 시간을 지체한 탓인지... 진짜 단 한 개 입에 딱 집어 넣었는데 걔가 동방에 들어왔다. 입에 넣고 살살 녹여 먹을 수나 있었으면 다행인데 입에 넣는 순간 들어오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고 나는 얼굴이 씨뻘개 져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 친구는 걔가 나한테 뭔 짓을 하고 헤어졌는지, 내가 아직도 걜 싫어 하는지, 그런데도 치토스는 좋아하고 지금 얼마나 배가고파 했는지 등등을 다 아는 터라 걔가 들어오자마자 진짜 겁나 큰소리고 파하하하 하며 웃어댔다. 내가 동방 밖으로 도망가서 치토스를 뱉고 왔을 때까지도 나는 빨간 얼굴이었고 친구는 웃고 있었다. 걔가 그 뒤로 어딜 갔는지 언제 갔는지 잘 기억도 안난다. 배달 온 치킨을 먹으며 형에게 아 왜 한 주먹을 주냐고 투덜 거리니까 형이 아직도 미워하냐고 이젠 그만 잊어버리라- 고 했던 것 같다. 


  열이야 올랐다가 식고 치토스는 내가 사먹으면 되지만, 용서할 마음은 아직도 없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을 골랐을 것이다. 용서하고 싶진 않지만 용서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불편해서.



용서할 수 없으면 용서하지 말라


  난 아마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5 용서와 치유 (인용요약)

pp.98-108

  관대함은 미덕이다. 자신의 상처만 과도하게 돌보는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여겨진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많은 관심이나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면 "아이 같다."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하라고 배운다. 용서하고 다 잊어버리라는 충고도 듣는다. 또한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배운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치유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배신을 당했을 때에도 용서를 할 수 있는 적절한 때와 장소가 있다. 하지만 초반부는 결코 그 적절한 때가 아니며, 그후로도 오랫동안 적절한 타이밍이 오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지나치게 빨리 용서하지 않도록 그리고 용서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용서하고 잊어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라. 삶을 치유하기 위해서는반드시 그를 용서해야 한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넘어가지 말라.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탓하기를 그만두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를 탓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삶을 치유할 수 있다. 당신은 희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 

  용서는 절대 가해자를 너그러이 봐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할 준비가 되었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그를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는 그에 관한 일이 아니다. 오로지 당신에 관한, 당신을 위한 일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용서라는 단어를 쓰기에 부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지나치게 자기비판적일 수 있고 때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 수 있는, 불완전하면서도 훌륭한 존재다. 당신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에게 더 관대해야 한다. 

  지난날과 자신이 저지른 실수들을 돌이켜보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관대하라. 자신이 지옥과 같은 시기를 거치고 있음을 잊지 말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거쳤다. 자신에게 최악의 적이 되거나 자신의 상처에 모욕을 가하지 않고서 이 악몽 같은 시간을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다. 당신은 반드시 그곳에 도달할 것이다. 


  내가 아직까지도 화가 나는 것은, 이 개좆같은 새끼와 빌어먹을 년 둘 다 나를 아는 사람이고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같잖게 보였으면 내 등을 찌르고 나한테 똥을 퍼부을 생각을 했을까. 내가 우습게 보였다는 생각이 계속 자존감을 갉아 먹었다.

  그 후로 대학촌 좁은 동네에 사는 바람에 바람핀 놈, 같이 바람 펴준 여잘 종종 마주쳤다. 저 치들은 그 환란을 겪고도 새 여친 남친 만나면서 잘만 돌아다니는데 나는 살만찌고 맨날 울기나 한다는 생각에 우울했었다. 지금이야 토실토실해서 좋다며, "살빼라", "화장해" 라는 말을 절대 안해주는 애인덕에 가스 약불 정도로 분노게이지가 줄어들었다마는 (요즘 사람 만날 일이 없어서 애인 자랑을 못했더니 심지어 블로그에 자랑)

  나는 아직 용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용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p.37

'나는 혼자가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었고, 살아남았고, 충만한 삶을 살고 있어. 나도 친구들의 도움으로 반드시 이겨낼 거야.'



나도 이겨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