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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존 스칼지 - 작은 친구들의 행성

by Desmios 2015. 4. 3.

작은 친구들의 행성 - 8점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작은 친구들의 행성>이라는 제목만으로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귀여울지를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나마 한국판 표지가 팝적으로 알록달록 잘 그려놓았으니 망정이지, 외국의 표지를 나중에 찾아봤을 때 '야, 이런 표지라면 아무리 존 스칼지가 쓴 책이라도 읽고 싶어지지 않겠다' 싶을 정도였다. (양키 감성의 판타지란 뭔 요다-이웍스러워서...)



  줄거리를 요약하면, 거대 기업 자라에 고용된 탐사+측량 기사인 주인공 <잭 할로웨이>가 우연히-실수로 엄청나게 비싼 보석 광석층을 발견한다. 이를 알게 된 자라기업 책임자와 자라기업의 자본이 전격적으로 행성에 몰려들게 된다. 누가 얼마만큼의 파이를 갖게 될지에 대해 날 선 논의가 이루어지는 도중, <잭 할로웨이>의 나무 위 외딴 오두막에 처음보는 토종 행성 외계 생물이 찾아온다. 

  그런데 그 생물이 겁나 귀엽다. 이족 보행하는 고양이 인데다가 손도 있고, 하는 짓도 귀엽고, 굉장히 영리해 보인다. 그러나 이 생물이 이 행성에 살고 있는 '지성체'라는 것으로 판결이 나면 자라기업은 비싼 보석 광석층이건 뭐건 더 이상 행성을 개박살 내서 자원을 쓸어 담는 일을 멈추고 행성을 떠나야만 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되니까 가려놓음



사진은 성북구 K대 앞 노가리집에서 키우는 애교냥

  물론 영상으로 귀여운 보송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의 좋은 점은 정형화 된 이미지가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독자가 상상하는 가장 귀여운 모습으로의 보송이를 떠올릴 수 있다. 나는 햇살 같이 뽀얀 노란색에 흰색으로 줄무늬가 들어간 예쁜 아빠 보송이를 상상했는데, 책의 묘사에 나온 '별갑 같은 색깔'을 찾아보니 카오스 고양이라고도 부르는, 이런 색깔이라더라. 


별갑 색깔(=카오스 고양이) 구글검색결과 링크


그래도 귀여움!



  줄거리를 적어 놓기는 했지만, 존 스칼지 작품 특유의 시니컬하고 약간 재수 없는 주인공의 멋들어진 유머와 사건의 조각들이 '톱니바퀴 맞물리 듯' 들어 맞는 것은 요약으로 드러나기 힘든 즐거움이다.

  더욱이 이 책의 또 다른 멋진 점은 번역의 세심함인데, Fuzzy라는 원어를 '보송이'라고 번역해 놓아 어감이 확 살면서 정말 귀엽게 느껴진다. 옮긴이의 말에서 고유 명사의 번역과 제목을 정하는 데의 어려움을 풀어내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끄덕여지며 '보송이'라니 너무 귀엽다. 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옮긴이의 말 중

p406


  '퍼지Fuzzy'를 '보송이'로 옮기기까지 많이 고심했다. 고유 명사로 생각하여 그대로 옮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옮기기로 했다. 첫째, 퍼지Fuzzy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지 않아, 영어 단어 혼용에 익숙한 독자라 해도 그 뜻을 바로 떠올리기가 어렵다. 오히려 퍼지fudge 사탕이나 땅딸막하고 통통한 무엇인가(pudge, 또는 퍼지다)가 떠오를 수도 있는데,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둘째, 본문을 읽어보면 이 명칭은 주인공 잭 할로웨이가 귀여운 동물이라고만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붙인 이름이다. 우연히 만난 개나 고양이를 대충 '복실이'나 '나비'라고 부르다가 그 이름이 정식 명칭이 되어버린 셈이다. 가볍고 코믹한 상황과 이 새로운 종족의 귀여움이 함께 느껴지는 이름이어야 했다.

  보송이라는 번역어를 정하고 나니 제목이 또 문제였다. 원제 'Fuzzy Nation'은 미국의 체로키족 자치정부Cherokee Nation를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제목인데, 보송이 나라로 직역해서는 오히려 의미가 살지 않았고, 아동 소설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파이퍼의 원작 소설 <Little Fuzzy>를 참고하여 '보송이'를 '작은 친구들'로 다시 한 번 의역하여 <작은 친구들의 행성>으로 정했다. (재미삼아 적어두자면, 본서의 독일어판 번역제는 <야생의 행성>, 스페인어판 번역제는 <뜻밖의 손님>이었다.)


  이렇게 원작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를 생각해보고 우리말에도 적절하게 귀여운 단어를 고심한 세심한 옮긴이 덕에 나는 이 책이 정말 재밌었다. 나중에 책 날개를 다시 찾아보니 어쩐지 역자는 번역가이면서 동시에 소설가이며, 깔깔 거리고 재미있게 읽었던 <멋진 징조들>을 번역한 사람이었다. 


SF와 고양이, 법정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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