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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황현산 - 밤이 선생이다; 두터운 현재의 시간을 가진 사람이 쓴 무게감 있는 글

by Desmios 2015. 11. 13.

 

밤이 선생이다 - 

8점


황현산 지음/난다

 

  이 책은 불문학과 출신의 노교수가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이다. 각 글은 책 세네장 정도로 짧은데 한 장, 한 장이 참 귀하다. 대부분 별로인데 그 중 몇 개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괜찮고 그 중 몇은 매우 훌륭하다. 물론, 책 한 권 분량을 기획해서 쓴 것이 아니라 여러 해에 걸친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이라 "야 이거 정말 멋진 문구다" 한 부분이 한 번 또 나와서 실소하게 하기도 했고, 저자의 고향인 낙도에 대한 설명이 너무 여러번 반복되어 약간 지겨우려고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써야 했을 짧은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니만큼 그 정도는 애교로 생각할 수도 있다. 

 

  참 좋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이 보이면 귀퉁이를 접어놓고, 보통은 독후감을 위해 추리면서 다른 부분보다 약한 것 같다고 생각해 접은 귀퉁이를 풀어 놓는 경우가 많다. 

 

접어 놓고 싶은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살까 고민했음

 

  그런데 이 책은 독후감을 쓰면서 버릴 수가 없어서 더한 부분이 더 많다. '이 부분을 독후감에 쓰려면 그 단락뿐만 아니라 글의 앞 뒤 흐름이 더해져야 훨씬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는 것은 문장과 문단이 따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글 한편이 유기적으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문장도, 문장에 쓰인 단어도, 문장이 속한 문단도, 문단이 연결된 글의 전체 맥락까지도 훌륭한 글이다. 글쓰기 수업 중에(정확하게는 독서 어쩌고 자격증인가에 관련된 수업이었지만) 자신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신문의 사설을 베껴 쓴다고 교사가 조언했다. 손만 아프게 무슨 짓이람? 그런다고 필력이 느나? 싶었는데, 이런 글이라면 정말이지 베껴쓰고, 외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칭찬만 하고 있자니 어쩐지 자리가 불편하고 목덜미가 따끔따끔하다. 다른 책들도 대부분 욕했으니, 이 책도 욕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생각나질 않는다. 굳이 말해보자면... 사진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책의 가운데 부분에는 접힌 부분이 전혀 없다. 그 부분은 「밤이 선생이다」의 제2부에 해당하는 구본창과 강운구의 사진에 대해 해설이랄지 평론이랄지 감상 같은 것을 적은 부분이다.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고, 좋아하는 취향의 사진도 아니라서 칼럼을 모아놓은 책에 이런 글이 갑자기 왜 있나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책이 별로라고 흠을 잡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저자의 글에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속마음을 헤집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들을 날카롭게 비평하면서도, 내내 그 밑바닥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화합이 있어야 한다는 햇살 같은 긍정론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멍청하고 착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악행에 눈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한계를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 보듬어 나아가야 한다는 순수함에 나까지도 괜히 포용적인 체 따뜻한 눈 모양을 하게 만든다.  

 

  책은 훌륭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책이 너무 훌륭한 까닭에 독후감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이런 멋진 글을 읽고 개발새발 비문과 욕설이 뒤섞인 독후감을 쓰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더욱이 이 책을 친구에게 권했더니 친구도 재밌게 읽고는, 자기가 좋아하는 에디터가 쓴 이 책에 대한 글을 보여주려고 했다. 조금 읽다가 더 이상은 읽지 않겠노라 돌려주었다. 황현산의 글도 훌륭했고, 그 에디터의 글도 좋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정확한 단어, 세련된 문장으로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썼다 지웠다 일주일 넘게 독후감을 묵혀두다가 다시 황현산의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풀린다. 역시 따뜻한 글이다.

 

  공부를 많이 했고, 아직도 자주 책을 읽으며, 깊게 사색하는 경우가 많고, 말을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간할 수 있는, 마음 좋은 할아버지가 해주는 '말씀' 같다. 어른들이 모두 이 책과 같은 마음, 이 책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꼰대소리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텐데. 책을 읽은 후에 곰곰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이미 상도 여럿 받은 이 책과 저자 할아버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찬사와 내가 주는 별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나도 이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정말 배부른 책을 읽었다고, 멋진 글이었다고 감명 받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얼굴을 잘 봐두었다가,

비슷한 할아버지가 내가 탄 버스나 지하철에 타면, 

자리를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 덧

책의 몇 구절을 소개하고 싶은데, 제일 멋진 구절을 고르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걸 전부 줄줄 늘어놓으면 저작권 위반이라고 잡혀 갈 것 같으니 그 중에서도 제일 감동 받았던 "몽유도원도 관람기"의 일부를 발췌한다.

 

몽유도원도 관람기

 

  한국 박물관 개관 백 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되었던 몽유도원도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흐레 동안만 전시된다는 그 그림을 보려고 우리 식구들은 제법 일찍 서둘러 전시장을 찾았지만 먼저 온 관람객들이 벌써 전시장 건물 밖으로 백 미터도 넘게 줄을 짓고 있었다. 

...

  줄을 지어 기다리는 관람객 가운데는 몽유도원도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우리 앞에 선 노인은 줄어드는 줄을 따라 서둘러 걸음을 옮길 수도 없을 만큼 지쳐 있었지만 다른 관람객들에게 상설 전시장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켜 알려주었고, 우리 뒤편의 중학생 남자아이는 제 어머니에게 "엄마도 공부 좀 하세요"라는 말을 섞어가며 몽유도원도의 역사를 줄줄이 풀어내었다. 그들은 모든 사정을 미리 알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

  다른 관람객들 처지도 물론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진품 앞에 서라고 해서 저 복제품 앞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본 사람은 필경 없었다. 그러나 줄을 서서 기다리던 두 시간 내지 여섯 시간과 그림 앞에서 보낸 2분을 견주며 후회하는 사람도 없었다. 통로를 빠져나와 다른 전시품 앞으로 걸어가는 관람객들의 말을 엿들어보면 낡은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그 긴 시간을 스스로 대견하게들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몽유도원도의 관람은 일종의 순례 행렬이 되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아흐레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광장에 구절양장을 그린 긴 행렬은 이 삶을 다른 삶과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시위였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