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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그리움과 두려움의 길항

by Desmios 2008. 12. 20.



"저는 이루미나를 사랑합니다." 

"너무 사랑하셔서 몸의 괴로움은 상관없을 정도로?" 

또다시 나오는대로 말해버리고 만 율리아나는 황급히 입을 가렸다. 
하지만 에름은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전 성자가 아닙니다. 공주님. 상관없다니오. 하지만 전 이것을 말하 
고 싶군요. 사랑과 고통이 꼭 길항작용을 하는 걸까요?

"예?" 

"사랑이 크면 다른 사소한 것은 견딜 수 있다. 혹은 사랑 때문에 눈 
이 먼다. 정말 그럴까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엔 그렇지 
않습니다. 전 이루미나를 사랑합니다만 그것 때문에 그녀를 한번 안을 
수도 없는 고통을 잊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커지더군요. 하지만 그 
녀를 안을 수 없다는 고통 때문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지도 않 
았습니다." 

"그런…가요?" 

"그래서 전 그 두 가지 감정을 똑같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하나 
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하지 않기로. 둘 다 정직한 저의 감정이고 그 
래서 둘 다 저에겐 소중한 겁니다. 전 영원히 이루미나를 사랑할 것이 
고, 그녀 때문에 겪는 고통 때문에 그 사랑이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모르겠군요." 

"저도 더 이상은 설명할 수가 없군요. 제 경험에서 느끼는 것들이라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말할 수가 없어요. 미안합니 
다." 

  이영도, <폴라리스랩소디> 11장 '후회는 부정된 자신에의 그리움'



  앞으로도 분명 그러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제까지 이해 되지 않았던 책의 부분들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 있다. 아! 바로 이런 것을 말한 것이었구나! 나는 이영도씨의 책들을 좋아해서 일년에 한두번씩은 꼭 전권을 다 읽는데 이 부분은 내가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부터, 얼마전에 다시 읽었을 때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사랑과 고통이 공존 할 수 있지? 안을 수 없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안을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고통이 공존하다니. 자신은 성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성자 그 자체잖아.'
  이 것이 나의 감정이었다. 질문한 율리아나가 "모르겠군요"라고 하는 데 기껏 부가 설명한 것이 "너도 더 살아봐, 경험을 공유해봐" 라서 나는 그냥 이상한 사람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율리아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에름후작은 내 매부도 아니라서 그다지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늘에와서야 나는 그 상반되는 듯한 두 가지 감정의 공유가 무엇인지, 길항작용하지 않는 그 것들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호주의 님빈은 나에게 나쁜 추억을 선사한 곳이다. 나는 그 곳에서 겪은 나쁜 기억 때문에 그 곳의 여행을 떠올리면 불안해지고 슬프고 무서워 진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곳은 내가 아른한 눈으로 그 곳의 숲을 추억하게 하고 또 가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 당시 썼던 일기의 말을 빌리면 그 곳은 현실에서 폐기처분된 모든 낭만이 모여 고집스럽게 자신을 주장하는 곳이다. 그리움과 꿈들이 모여 노래하는 곳 "나는 여기 있어, 너희들이 떠나보낸 꿈들이 바로 여기에 있어!"

 나는 이 상반된 감정 때문에 그 곳을 다시 추억하는 것이 항상 망설여졌다. 그 곳에서의 기억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곳을 그리워 하는 내 모습이 모순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알았다. 그 감정은 서로 길항작용해서 상쇄되거나 한 감정이 다른 감정에게 영향을 끼쳐서 하나의 감정이 그 곳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두 가지는 모두 정직한 나의 감정이고 소중한 나의 기억이다. 하나를 위해서 다른 하나를 억지로 잊고 희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후회 할 필요가 없다. 후회는 부정된 자신에의 그리움이라는 말처럼, 나는 나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도 모두 포함해서 나를 이루는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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