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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_설

신속불친절 서초경찰서

by Desmios 2009. 2. 18.

  서초구 교대역, 대법원 근처에 있는 서초경찰서에 가면 로비에 대강 이런 문구가 써있다.
 '신속. 친절. 공정. 서초 경찰서 서초 주민과 함께하는' 어쩌고 저쩌고 여하튼 잘하겠습니다. 이런 것이겠지.

  사실, 우리네 소시민 들은 경찰서에 가볼 일이 별로 없다. 끽해야 운전면허 잃어 버렸을 때 신고하러 가는 정도고, 나는 반디앤 루니즈를 못찾아 가지고 종로에 있는 파출소에나 한 번 가보고, 에 엠피쓰리 줏었을 때 갔다 주느냐고 한 번 가본 정도였다. 이번에는 법원에 뭐 제출할 서류가 있어가지고 가게 되었는데 미리 그 서류가 필요한 줄 알았으면 동네에서 뽑아오는 건데 몰랐기 때문에 서초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이름이 '종합 조회실' 인데 가봤더니 0.5 평방미터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 있다. 문을 열면 비껴서 닫아야 할 정도의 공간이고 앞에 작은 창이 있고 그 안에 경찰 아자씨(아마도)가 앉아 계신다.

 


 "뭐하러 왔어?"

 와오, 박력있다. 굉장한 반말이다. 그 이후로 이어진 말도

 뭐에 쓰게 - 거기 1번 작성해 - 4시반에 와

 이렇게 빠르다. 내가 간 것이 3시 45분이었고 4시 반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물어보았더니

 "응"


 사실 좀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쾌했는데 로비에 내려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굉장히 신속했던 것이었다! 최고 신속! 서류야 뽑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수 없으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치더라손 치더라도 저 반말과 그 짧은 말들이 민원이 얼마나 신속하게 처리 되는줄 알 수 있었다.

LES POIRES

필리봉(Charles Philipon, 1800-1862)의 LES POLRES

마침, 나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있었다. 사람들이 농담을 이용하여 불만을 표현하는 그 유명한 '배얼굴 풍자' 부분이었다. 농담을 하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그래도 왠지 나는 내 어린 얼굴 때문에 날 깐보고 반말을 찍찍 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쉬이 사그라 들질 않았다.
  표어만 여기저기 써놓지 말고 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하기사, 제대로 잘 하고 있으면 일부러 표어를 걸어 놓을 필요는 없겠지.


 요즘 정치권이 5공 부활이네, 불정권입네, 콘테이너니 벙커니 별 그지 박사리 같은 공권력으로 퇴보하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그런가 경찰서는 을씨년스럽고 경찰공무원은 성인 민원인에게 반말 찍찍 해대고 슬프다. 공권력의 유혹이라는게 얼마나 대단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무슨 저기 후진국의 독재정권 국가도 아니고 이름은 민주주의 공화국인게, 창피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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