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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영화] 워낭소리

by Desmios 2009. 3. 16.
워낭소리
감독 이충렬 (2008 / 한국)
출연 최원균, 이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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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부터인가 집 한 구석에 노란 방울이 놓여 있었다. 이게 무엇이냐고 물으니 소 방울 이라면서 소방울 소리 좋지? 라고 물으셨다. 좋은 편이네 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쓸 데가 없어서 방울은 그저 그렇게 놓여 있다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집에서 소와 함께 자란 기억이 있는 어머니에게는 소방울 소리가 주는 추억이 있으셨을 테니 그 소리가 더 좋게 들리 셨을 것 같다. 그런 어머니와 함께 워낭소리를 보러 갔다. (워낭 :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또는 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나도 어렴풋이 외할아버지 댁에 가면 대문 밖에 외양간이 있고 염소니 하는 것들에게 쇠죽을 끓이던 커다랗고 냄새나는 가마솥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모습도 조금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쇠죽 냄새와 함께 자라셨을 것이고 집에 소가 들어오는 모습도, 팔려 나가는 모습도 보셨을 것이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밭을 매시는 것도, 쇠죽을 끓이시는 것도 보면서 자라셨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나는 다른 유학 가있느라 보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이따끔씩 할아버지 사진을 꺼내 보시면서 우셨다고 하셨다. 오늘도 워낭소리를 보는 중간 중간 어머니의 손수건은 눈가를 슥슥 훔쳤다. 

  영화가 끝나고 아버지에게 감상을 물으니, '괜찮은 편이긴 했는데 외국에 보여주기는 좀 창피하다'고 하셨다. 우리나라 빈곤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모습이 창피하시다길래 빈곤을 별로 모르고 자란 나는 그게 뭐 어떻냐고 생각하고 말씀 드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빈곤의 극치와 함께 자라신 아버지는 또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모습을 영화로 보니 그 기억이 나셔서 싫으셨나보다. (아버지는 집에 소는 커녕 밭도 없으셨다)

  물론, 영화 내내 너무 날카로운 음향 효과가 적잖이 귀를 후벼 파서, 귓속이 따끔거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흥미롭기도 하고 공감대도 형성 되기 쉬운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속 할머니가 계속해서 팔자 타령을 하시면서 투덜 거리실 때는 옆자리 앉으신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면서 깔깔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