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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정이현 - 달콤한 나의 도시 061121

by Desmios 2009. 3. 17.
달콤한 나의 도시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정이현 (문학과지성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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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구워먹고 자취방에 돌아오는 중의 차 안이었다. 수능에 치여서 허덕 거리던 나는 그 와중에도 단란한 가족생활을 구연하기 위해 내가 쉴 새 없이 명랑하게 떠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따라 누가 준 것도 아닌 의무를 이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이 나는 처음에 자유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학교를 나온 다는 것은 '사회'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노라 추억하는 것처럼, 사회는 학교보다 숨막히는 곳이 아니냐? 그렇다면 자유가 다 무어냐 스스로의 발목에 쇠고랑을 차주는 것일 뿐. 졸업식날 개집(강당의 별칭)에서 식을 끝내고 뛰어나오며 나는 '우어어어어 난 자유다!'하고 외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뒤를 바로 뒤쫓아오는 이런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을 새어 버렸다. 내가 너무 어리게 생각했구나 자유는 무슨. 이라며, 나는. 닥치지도 않은 것에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나의 이러한 고민을 '기우'라고 표현하셨지만 나는 그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 원인을 추측해 보건데 나는 기우2와 기우4를 헷갈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우2(杞憂)
ꃃ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 또는 그 걱정.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군걱정. 
 
기우4(奇遇)
ꃃ기이한 인연으로 만남.

 

 

 

 

 

나는 열아홉이다. 아직 닥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기우라면 나는 삼십대의 내-책에서의 오은수와 같은 나이의-게 있을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한 기우가 음절을 따라 펄펄 날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고민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나에게 멀지 않았다.

 

 

1. 오은수와 윤태오

 

내가 자취하고 있다고 하면 아이들의 반응은 대게 두 가지다. '좋겠다'와 '무섭지 않아?' 내가 자취를 하는 터이고 중학교 때는 그렇게 살고 있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자취하는거 어때(요)?'라고 물어 본다면 일단 평범한 대답을 흘려 넣고 씩씩한 척 허허 웃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무 말도 못하겠다. 혼자사는 것의 장점과 혼자사는 것의 단점이 서로 상쇄되어 남는 것이 없다.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 때는 비교 할 것이 없어서 편하기라도 했지.

 

내년에 스물이 되기는 하지만 나는 열아홉이다. 사랑이니 첫경험이니 동거니 취직이니 퇴근이니 야근이니 오대리니 홍이사니 이직이니 결혼이니 이혼이니 하다 못해 게이 친구까지 이 책의 대부분은 나와는 상당히 먼 이야기다. 그런데 왜 난 서른 한살에서 서른 두살로 넘어가는 오은수의 이야기가 이렇게 친근했을까.

 

외로움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래 노총각이셨던 국사 선생님이 결혼을 하셨다. 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르니까 안에서 사람이 나오더라고! 눈물 날뻔 했다니까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겨울 방학에 친구가 전학과 이사 문제로 잠시 자취방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르니까 안에서 사람이 나오더라고! 자취한지 일년 정도 뿐이었는데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지금, 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안에서 사람이 나오면 나도 울 것 같다. 겨우 삼년찬데도. 그래서 인가 오은수의 외로움이 친근한 것이.

 

나는 내가 썼던 그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두운 현관에서 '다녀왔습니다'라고 흘리는 표적 없는 인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장실에 들어가 세상 찌든 때를 조금 벗기고 온 무방비 상태의 나에게로 돌아왔을 때, 내가 넉다운 되어 침대로 쓰러져 버린다는 것.

 

 

 

2. 오은수와 김영수

 

나는 누군가 나에게 명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명령을 꾀나 잘 따르기 때문이다. 담임선생은 나를 이렇게 표현했다. '터프한 척 하지만 사실은 너무나 온순한(?)ㅈㅎ....'

 

 

빌어먹을! 난 이래서 어른이 싫어!

 

 

세상을 살다보면 비굴해져야 할 때가 있고 사실은 비굴하게 살면서 마음 안상하는게 제일 편한 삶인가 하고 나는 계속 세상 살이를 배우는 중이다. 벌써 이런 말 하는 것도 기우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나는 중학교 때를 정점으로 계속 침강하는 느낌이다. 비굴해지고, 얍쌉해지고, 친절해지고(이건 아직 조금 논란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날 감추고, 소리지르지 않고(이것도 논란의 소리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남에게 좋은 말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신경질 나는 급우에게 쏘아 붙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웃고, 웃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우유부단한 오은수를 "난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건 딱 질색이야!"라고 신경숙(잠깐 신경림인가? 난 항상 이 둘이 헷갈린다)의 외딴방을 읽었을 때 처럼 무조건 싫어 하지 못한건, 내 속에 있는 우유부단한 면, 소심한 면을 외딴방을 읽었던 여름부터 지금 초겨울까지의 기간동안 깨달았기 때문이다.

 

십대에만 할 수 있는 일 중 못해본 일을 해보려고 절박하게 노력하는 나를 자각한다. 어쩌면 노력보다는 머릿속으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만 하는 나를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무언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열아홉에서 이십으로 바뀌는 나이라는 것도 그럴까? 대학에 들어가면 갑자기 찾아오는 미친듯한 자유가 너희를 당혹시킬거라고 선생님들이 말한다. 역시 기우로 나는 그 것을 사알짝 걱정하고 있다.

 

나의 자유. 너무 웃긴 이름이다.

 

 

 

 

추신.

이 책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건 솔직한 얘기를 썼기 때문일까? 공감! 공감! 소설 공감이 있었다면 아마 붐베에 올랐을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내가 싫어 하는 소설류가 한국에서도 인기몰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일본식의 지루한 일상에 대한 나른한 소설 말이다. 공감! 공감! 을 외치며 붐베에 오르는 그런 고른나른한 소설들

 

제발 기우여라!

 

 

추신2.

난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면 외롭다고 그랬는데 웬걸, 낙엽이 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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