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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폴 오스터 - 달의 궁전 090321-22

by Desmios 2009. 3. 22.
달의 궁전 상세보기



  친구가 폴 오스터, 달의 궁전이 재밌으니 읽어 보라고 추천해 준지 꽤 된 것 같은데 같이 사는 친구의 책을 읽으면 된다는 핑계로 한참동안이나 찾아보질 않았다. 겸사겸사 다른 책들-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몸 쾌락 에로티시즘, 성문화 보고서-을 빌리고 소설을 하나 빌려야지 하고 생각 하던 차에 그 책이 생각났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빌렸다. 서가에는 달의 궁전이 두 권 꽂혀 있었는데 둘 다 책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이 읽은 책 치고 재미없는 책은 그다지 없었지만 어떻게 책을 보면 하드커버 책 표지가 저 꼴이 될 정도인가 싶기는 했다.

  책은 내 예상대로 몽롱하고 그짓말 같은 이야기로 채워져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흡입력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도 굉장한 흡입력은 아니어서 읽는 중간에 내려놓기가 어렵지 않은 정도였고 그렇게 무거운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들기가 어렵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가벼운 느낌이었다. (싸구려라는 의미가 아니고 말 그대로 가볍다는 느낌)

  책 제목의 단서처럼, 마치 달무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꼭 달은 아니고 달 보다는 흐리지만 밝은 달무리는 어디서부터가 달무리이고 어디까지가 끝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 인물들을 교묘하게 얽혀 끌어들였다가 말았다가 했다. 실체나 격식, 이야기의 '요체' 보다는 넘실거리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한 사람이 강렬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각각의 여러 강렬한 사람들이 엉뚱한 인연으로 얽혀서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무게중심이 주인공인 포그에 실렸다가 할아버지인 에핑이었다가 아버지인 바버였다가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고 각각의 주인공은 특색 있으면서도 서로의 그늘에 가려지기도 하고 서로 간에 헷갈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포그의 여자친구 키티와 포그의 어머니, 에핑의 부인 셋은 무게도 비슷하고 캐릭터도 희미한 게 비슷하다) 어찌 보면 그런 모호함이야 말로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일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구미가 맞지 않는 책임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좋다고도, 싫다고도 말하기가 애매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내가 책을 읽었는지 아니었는지 뭉글뭉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