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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한상복 - 배려 070614

by Desmios 2009. 3. 21.
배려
카테고리 자기계발
지은이 한상복 (위즈덤하우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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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책의 내용을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웬만해선 손대지 않는 책의 종류가 있다.

 말하자면 '성공한 10대들의 주목할 만한 몇가지 습관', '현명한 여성의 끝내주는 대화법' 뭐 대충 그런 종류, 무슨 '마시멜로우'니 '누가 내 치즈 다먹었어 시발' 이런 류의 베스트셀러들이다. 
  바로 지긋지긋한 자기계발형 도서들! 너도 이대로만 하면 성공 할 수 있다, 너도 이대로만 하면 10억 벌 수 있다, 너도 이대로만 하면 잘 살 수 있다, 너도 이대로만 하면 웰빙라이프 오케바리 고고. 그런 류의 책들은 언제나 베스트셀러 좌판 위에 자신만의 구역을 정해 놓고 절대 사라지는 법이 없다. 이쯤 되면 나는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그 많은 책들이 팔렸는데 어째서 아직도 세상에는 성공하지 않은 10대들, 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여성들, 10억이 없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걸까. 이대로만 하면 성공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대로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그래서 나는 자기계발 도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사는데 있어서 굉장히 까다롭게 구는 나도, 그 효용을 의심하지 않고 자기계발형 책을 산 경험도 있다. (설득의 심리학, 이 책 역시 베스트셀러 출신이다) 그리고 나는 설득을 잘하게 되지도 않았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함께, 책장에서 꺼내지는 일 없이 푹푹 먼지만 쌓여 가는 '설득의 심리학'을 보며 씁슬한 표정을 짖게 되었다. 아이고 내돈이야.
 
그리고 나는 얼마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시절을 알고 있는, 동네 오빠를 만나서 책을 선물받았다. '원하는 것을 얻고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현명한 여자의 대화법 Awesome COMM skills for wise women' 무려 Awesome 한 스킬을 가르쳐준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마 책을 필 수가 없었다. 마음은 너무나 고맙지만 차마 시간을 투자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전 8시 43분쯤에 만난 선배가 '책'을 선물로 준다고 했을 때 바짝 긴장했다. 무슨 책인데요? '동화야' 다행이다. 그리고 나는
 
 '배려'를 받았다.
 
 이쯤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긍정적인 냄새가 나는 말을 시작으로 책 '배려'를 칭찬하는 말이 올라오는 것이 정석일지 모르겠지만 책에서 이야기 하는 '아스퍼거 신드롬(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이다)'도 아니고 그저 이기적일 뿐인 나, 게다가 생리통 때문에 굉장히 짜증이 난 나, 는 그럴 마음이 없다.
 
 내용은 뭐, 제목에 다 나와 있다. 배려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책의 골자는 그러하고, 그 내용을 말하기 위해 주인공은 굴욕적인 발령을 받고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고 인도자를 만나고 버벅거리다가 배려의 힘을 이해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힘든 삶이 있기는 있지만 서도 여유있게 남들을 배려하고 인도하며 살아간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현명한 여자의 대화법'을 펴보지도 않은데 비해 배려를 24시간 안에 다 읽었다는 것이다.
 배려는 재밌는 책이다. 자기 계발형 도서라는 것을 잊어 버리고 읽다보면 흡사 추리소설이라도 읽는 듯 주인공이 성공 할 수 있을까? 철혈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면서 다음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은 '배려를 합시다'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속한 프로젝트 1팀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며 모든 일과 과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누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사건을 벌인 것인가 하는 모든 나의 궁금증은 '8개월 후'라는 네 글자와 함께 무참하게 무시되고 이야기는 얼렁뚱땅 넘어가서 설렁설렁 끝을 맺게 된다. 이게 뭐지. 겨우 해피엔딩이라는 이유로 나 지금 만족하라는 건가?
 
 그리하여 책을 읽은 내가, 과연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것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라면 설득의 심리학을 소장한 내가 설득의 대가가 아니게 된 것 처럼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 친구를 독촉해서는 재밌게 읽어 놓고는 최고로 구리다고 썼던 'SKT' 감상문이나, 적의 화장법에 대해서 썼던 감상문에 비하면 꽤 훌륭하고 성실하게 책에 대해 쓰고 있지 않은가.

   그것 만으론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