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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밀로스 포만, 장 클로드 카리에르 - 고야의 유령 070505

by Desmios 2009.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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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누가 나에게 이 책이 재미있다고 추천해 준건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째 내가 너무 기대를 하고 읽어서인지 영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기도 없는데다가 좀 화가 나기도 했는데 기독교인인 나에게 있어서, 천주교도와 개신교도들의 꽉막힌 교조적 태도와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성직자들의 이야기는 꽤나 짜증을 유발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칭 '신의 대리인'이라 하는 사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언행에 하나하나 신성함을 부여하고, 그 어떤 행동 설마 살인이라 할지라도 신의 의지라면 (사실은 신의 의지라고 '믿으면') 서슴없이 저지르는데다가 그러한 행동에 대한 인간적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다른'과 '틀린'을 구분하지 않고 나와 다른 너의 모두를 이단이라 챙하며 그렇게 생각하는 너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꽉막힌 태도. 천장까지 닿을 것 같은 높은 모자에 의복은 근엄하고 성스럽기 짝이 없는 흰색, 금빛 자수를 넣고 손에 홀까지 들고 있는 모습은 흡사 사라진 왕이나 황제를 보는 것 같다. 교황은 신의 종이라기보다는 마치 인간의 신 같다.

 

 그리고 개신교는 그러한 가톨릭, 구교의 모순에 반발하고 개혁을 외치며 뛰어 나온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요즘 목사들의 복장을, 그들의 성단聖壇을 보고 있자면 인간은 어쩌면 이렇게 권위를 사랑하고 권위를 포장하기 위한 모든 장치를 위해 헌신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 2차 종교 개혁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 때문에 이네스가 종교재판소에 들어가 미쳤다던가 프랑스 혁명과 시대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 스페인의 비극, 고야의 그림에 대한- 특히나 제목이기도 한 고야의 유령에 대한 것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책의 카피라이트는

 

 암흑과 혼돈, 핏빛으로 얼룩진 대혼란 시대의 스페인,

 욕망에 사로잡힌 남자와 한 여인을 둘러싼 비극이 한 폭의 회화처럼 펼쳐진다!

 

이건만 나는 로렌조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생각되질 않는다. (여인/이네스의 비극같은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말하자면 로렌조는 이런 삶을 살았다.

 

 시골에서 태어난 로렌조 카사마레스는 신학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여 성직자가 된다. 종교재판소에 들어간 로렌조는 종교재판을 강화하고 이렇게 말한다.

 

 

 "대화를 귀담아 듣다가 물질이 원자라고 불리는 작은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내세요. 이런 헛소리는 성체 교리에 위반됩니다. 성신은 면병(미사 때 성체를 이루기 위해 쓰는 밀떡) 하나하나에 현존하지만 그렇다고 물질은 아닙니다. 성신은 원자로 구성되지 않았으며 민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리와 비슷한 생명이 다른 혹성에도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사람들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지구는 피조된 세상의 중심입니다.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창조했고, 그 인간을 이 지구에 살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지구는 별 중의 여왕이며, 양심과 죄와 속죄가 가능한 유일한 별입니다."

 "지금은 겨울이고 몹시 춥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에 어느 집 앞을 지나게 되면 고개를 들어 살펴보십시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안는다면 거기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필경 안식일에 모든 활동을 자제하는 유대인일지도 모릅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지만 신의 어머니는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자는 이단자입니다. 예수가 바로 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름달이 뜬 밤에 저녁 식사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경 다른 악마들과 만날 약속이 있는 사탄의 제자일 것입니다. 이름과 주소를 적어두세요. 특히 여자일 경우에는 더욱 철저히 기록해야 합니다."

 (본문중에서 현대문학출판사 초판1쇄 2006 p.67, 중간중간 생략함)

 

 

 결과적으로 여주인공 이네스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 (이네스는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로렌조는 이네스의 아버지에게 초대받았다가 고문에 못이겨 자신은 원숭이라는 자백서를 쓰게 된다. 그 자백서가 이유가 되어 로렌조는 성직자 자격을 박탈당하고 프랑스로 도피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온 로렌조는 나폴레옹의 관리로서 성직자 시절에 종교재판소에서 사용하던 화려한 언변을 그의 법정에서 사용한다. 혼란의 시대의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이네스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이네스와의 사생아인 알리시아를 머나먼 곳으로 보내버리려 한 것이 회화처럼 펼쳐지는 비극인가? 결국은 교살형으로 죽은 로렌조의 시체를 이네스가 따라가는 것이 회화처럼 펼쳐지는 비극인가?

 

 로렌조, 이네스의 일생보다, 초상화에 손을 그리는 것에 추가요금을 더 받으며 산 고야의 일생보다, 뜨고 다시 지고 다시 뜨는 왕들의 일생보다.


 인간이 지독히도 인간답게(죽이고 빼앗고 때리고 울고 잠시 웃다가 죽는)살아가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가지에 지독히 집착하다가 또 다른 것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는 그 모든, 인생 자체가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