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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

김형경 - 좋은 이별

by Desmios 2010. 2. 8.
좋은 이별 - 6점
김형경 지음/푸른숲

  나름 2년을 함께 보냈던 녀석이 떠나고 나서 나는 그가 남긴 물건들을 다 불살라 버리지도 않았고, 온 집안에서 그의 사진을 없애지도, 누구든 붙잡고 하염없이 울지도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 바빴다. 사실을 말하자면 애도할 시간적 여유가 없도록 나 자신을 일에서 일로 몰아 댄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의 틈틈히 시간의 빈공간을 채우듯 쓸쓸함이 몰아치면 그 때마다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아직은 안돼. 아직은, 아직은 쓰러질 수 없어. 지가 무슨 선채로 화살을 맞아 죽은 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을 모질 게 먹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자학모드에 들어갔다. 마시지 않던 술을 마시고, 헤롱거리면서 아무에게나 기대고(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밥도 안먹고, 잘 쉬지도 않았다. 스트레스 속으로 내가 나를 옭아 매며 나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내가 했던 소소한 많은 것들이 애도 작업의 일종이었다는 것을 안다. 이 외에도 나는 손톱을 모으기 시작했고, 이전까지는 콧방귀만 끼고 지나가던 이별과 사랑에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있으며, 사고는 사람관계에 대한 화두 주위를 맴돌고, 글을 쓴다.

  더이상 뭐라고 쓰기가 힘들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고양이과 인간과 개과 인간', '좋은 이별'에 관련해서 1월부터 계속 정리해 글을 쓰려고 노력을 했지만 블로그 글쓰기에 들어와서는 한참 그 하얀 공간을 쳐다만 보다가 창을 끄곤 했다. 아직은 마음이 정리 되질 않았다. 정리해서 예쁘게 옮겨적기는 머릿 속이 끈적끈적 더럽다. 8월에 그가 가서, 12월부터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제 2월이 되어 6개월 정도 지났으니. 아마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이 그 것들에 대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독서메모>


p.27-28 __________________________애도의 단계들
 - 1969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애도의 5단계 :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 1962년 그랜저 E. 웨스트 :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사로잡히게 되는 감정의 10단계 : 충격, 감정의 표현, 절망과 외로움, 육체적 불쾌감, 공포, 죄책감, 분노와 적개심, 저항, 희망, 현실 긍정
 - 충격과 부정, 망연자실, 정신 산만, 비탄과 절망, 거절과 버림받음, 실패감, 죄책감과 후회, 수치심, 적의와 원망, 분노와 증오, 불안과 두려움, 마비되는 감각, 불면, 안도감, 자기 파괴적 생각과 기분, 집중력 저하, 식습관 변화, 공상과 환상 등등.
 - 2004년 로셸 알메이다 : 여성의 애도 작업 4단계 : 상실의 현실 수용하기, 고통과 슬픔 통과하기, 망자 없는 환경에 적응하기, 죽은 자에 대한 감정을 재조직하고 삶과 함께 나아가기

미움 시기 원망 불안 우울 집착 자괴감 당혹 짜증 분노 미련 답답함 버림받은느낌 걱정 분함
가식웃음 허세 미안함 슬픔 원망 뻔뻔스러움 켕김 외로움 불만 당황

p.7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유아기적 태도
  사랑을 잃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유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기들은 자기에게 만족스럽고 편안한 것은 좋은 것이고, 불만스럽고 불편한 것은 나쁜 것으로 이해한다. 내가 좋은 것은 사랑하고 내게 나쁜 것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고,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에게 화를 내고 신을 공격하는 것은 상실의 순간 우리가 잠시 유아기로 퇴행하기 때문이다. 퇴행하여 무의식에 있는 그 시절의 상실감을 다시 경험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는 비교적 더 자란 사람이고, 나머지 몇몇은 유아기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애새끼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린 모두 알게 모르게 애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는 덩치큰 애새끼들이었다. 누가 더 입을 삐쭉 내미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p.13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랜덤하트
  (사물이 아니라 사람도 일시적인 대체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우리는 간혹 주변에 있는 사람 아무하고나 관계를 맺게 되기 쉽다. '랜덤 하트'를 추구하는 까닭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여전히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중략) 대체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들 중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나쁜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다. 이를테면 술이나 담배, 약물같이 구체적인 해를 입히는 대상들이 있다.


  '너희들은 그냥 같이 다니는 것 처럼 보였을 뿐이야'
라는 말에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이 슬프게 느껴졌다.
  '진심이었어요'라고도 말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비참했다. 나는 가슴으로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상하게 계속 심장이 쿵쿵 거렸다. 나는 여기 있는데 너는 뭐하고 있는거냐고 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술이나 마셨다.                 흑심을 품고 앵긴 상대에게서 심장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술김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으면 기분이 묘하다. 집에 와서도 쿵쿵거리는 것이 가라앉질 않았다.
출처 : 네이버 웹툰, <어른스러운 철구> 25, "익숙해서"

p.155, 228 ____________________________독서의 자폐성
  정신분석을 받은 이후에야 독서 행위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는 먹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처음에 독서는 우선 구강기 대체물이었을 것이다. 내가 책의 종류와 유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은 내 무의식 속 빈 공간이 그토록 크고 깊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중략) 또한 독서는 편안하지 않은 현실을 피해 숨어드는 내밀한 자폐 공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으면 누가 불러도 듣지 못할 정도로 몰입했던 것을 보면 아예 외부 현실에 대해서 눈과 귀를 닫고 싶어 했는지도 몰랐다.


추신. 그래도 냉정하게 책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통곡의 벽에 대한 건 좀 더 알아보고 썼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틀린' 사실을 보고 있으면 책을 읽다가도 정신이 튀어 버린다.
 '애도'라는 개념에 대한 책이긴 하지만 책 전체가 모두 애도 개념에 대해서 써있는 것을 보면 심술맞은 기분이 든다. 모든 현상을 애도라는 안경을 통해서 보고 해석하고 자르는 것만 같다. 마르크스적 환원주의도 아니고 이 시대에도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내가 다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