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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즐거움/이지적 성

김형경 -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by Desmios 2015. 3. 6.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6점
김형경 지음/사람풍경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 - 6점
김형경 지음/사람풍경

  역시 책을 읽은 독후감은 재빨리 써야 한다. 사실상 내가 독후감을 쓰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해서이다. 이런 돼지같은 이유로 글을 쓰는데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란다니 부끄럽지만서도... 이따금씩 블로그에서 쓰다 만 글들을 한번씩 눌러서 완성하는 경우가 있는데 쓰다만 독후감은 아무래도 완성할 수가 없다.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내용이 생각 나기는 커녕 이런 책을 읽었는가하고 머뭇거리는 적이 더 많을 지경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다시 살린건 다행히 마음에 드는 구절을 적어 놓은 통이었다.

여성의 오르가즘[각주:1]을 폭죽에 빗대어 묘사해놓았는데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권 pp.320-321

  밤바다를 향해 꽃불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확 펼쳐졌다가 이내 가뭇없이 스러지는 꽃불들을 보고 있자니 인혜는 비로소 사람들이 왜 그토록 불꽃놀이에 열광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거기에도 에로티시즘이 숨어 있었다. 도화선이 타 들어갈 때의 입안이 마르는 긴장감, 슈우웅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솟구칠 때의 그 아찔하고 간질거리는 느낌, 허공에서 꽃불이 폭발하는 순간의 거대한 황홀, 불꽃이 사윈 후 침묵처럼 찾아드는 어둠의 쇠잔함. 그 일련의 과정들이 아무래도 섹스의 과정과 닮아 있었다. 세상에, 그토록 높은 곳까지 들어올려져 일순간에 터져나가는 황홀경이라니…….

  (중략) 인혜가 느끼는 여성의 성욕이란 폭발과 해체의 욕망이었다. 몸 안에 가득 채워져 있는 어떤 것이 터져나가 파괴되려는 욕구였다.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단숨에 터져버리는 저 불꽃들처럼.
  그러고 보니 꽃불들의 종류는 에로티시즘 감각의 다양성을 은유하고 있는 듯했다. 일직선으로 힘차게 솟구쳐 올라 공중에서 활짝 피는 꽃불도 있고, 소리는 요란하게 시작되는데 막상 터질 때는 픽, 한두 점 빛나고 마는 꽃불도 있었다. 발사된 후 마치 뱀장어처럼 공중에서 꼬불꼬불 길을 바꾸다가 푸시시 시들어버리는 것도 있었다. 그것들은 아무래도 성행위의 양태들을 고스란히 모방해서 만든 상품 같았다. 


포르노가 상업주의적이고 남성의 시점에서만 다루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고, 소위 일본에서 제작된 일련의 AV 기획물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장소와 사람만(심지어 어떤 때는 사람마저 돌려쓰기 한 듯 비슷한) 바뀌고 다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연기도 맥빠지고 맨날 앵앵앵 앵애애앵애앵 노노잼 (빨리 넘겨서 앵애앵 부분만 봐서 그런거 아니냐고 한다면... 그건...)[각주:2]

"에로티시즘 감각의 다양성"이란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다양한 것일텐데 맨날 똑같이 흥분하고 똑같이 끝나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인위적이어서 흥이 안나는 것이다. 저 불꽃에 비유한 것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주변에 계속 얘기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책 이름을 다시 찾았으니 좀 더 잘난체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헴, 김형경이 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 이런 내용이 나왔는데요-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남성들은 왜 여성의 성적 능력을 억압해왔을까요?"

  "여성의 출산 능력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어요. 그 이론은 남성들이 더 창조적인 이유도 출산 능력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고 설명해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어요. 종족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사유 재산을 수호하기 위해서, 남성들은 여성의 성 에너지가 한번 폭발하면 한 남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는 활화산 같은 거라는 위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 p.233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섹스는 여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남자와 동침한 다음날이면 내 몸과 마음이 얼마나 환하게 피어나는지를 알고 있어요. (중략) 그렇지만 남성들은 아니에요. 그들은 섹스 후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 뻗은 상태로 있다가 코를 골며 잠들죠. 실제로 섹스 후 다리에 힘이 빠져 앞 차와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람도 있고, 섹스 후면 눈에 띄게 눈가에 검은 그늘이 지는 사람도 있어요. 수펄은 여왕벌에게 수정시킨 후 죽는다고 하고, 수사마귀는 암사귀와 교미하는 동안 기꺼이 머리통부터 암사마귀의 먹이로 바친다죠. 그것은 결코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에요."
  그리고 인혜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남성들이 오르가슴에서 내는 소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죽음과 파괴의 소리인가 하는 거였다. 허억, 끼이익, 끄으윽……. 그것은 총 맞고 쓰러질 때 내는 소리, 목 졸릴 때 내는 소리, 문틈에 끼이면서 내는 소리와 틀림없이 같았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 p.237


  책의 제목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인데 어째 내가 좋다고 메모한 내용은 오르가즘이니 성적능력의 억압이니, 섹스 같은 것들이라니. 다른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여긴 저번에 쓰다 만 독후감 초반부와 메모들을 버리기 아까워서 접어 놓음. 그런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1. 오르가즘인가 오르가슴인가를 헷갈리고, 찾아보고, 고민하다가 즘으로 쓰기로 했다 원어는 프랑스어라는데 왠지 '오르가슴' 이라고 하면 '가슴'이 '오른다'고 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묘하게 거슬린다 [본문으로]
  2. '일련의 AV'를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다고 해야 하나? 하는 용어를 몰라 검색해보다 발견한 <쇼킹재팬_색의나라> 유튜브! http://youtu.be/mcx9mg3kGpI 역시 길어서 보다 말았는데, 일본 AV업계의 시조격인 감독에 대한 다큐 형식으로 어째 요즘 찾을 수 있는 것보다 다양한 시도와 섹슈얼리티를 다루고 있지 않은가 싶다. 모자이크는 되어 있지만 노골적인 장면이 많고, 노골적인 것에 비해 인터뷰가 많아서 지루할테니 관심 있으신 분들만 보시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