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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눈이 살포시 잎사귀 위에 피었다. 솜솜 맺힌 것이 보드랍고 따뜻해 보인다. 혹 불면 민들레꽃씨마냥 훨훨 난다. 자기가 꽃인줄 알고 있다. 목화라 하니 영조와 정순왕후의 일화가 생각난다. 영조는 조선 왕 중에서 제일 장수한 왕이고 말년에 노망이 들고 아들을 뒤주에 가둬서 죽이기는 했으나 훌륭한 일도 많이 하고 정치도 잘 한 왕이었다고 한다. 영조가 65세에 왕비를 잃고 새 왕비를 맞아 들이기 위해 여러 규수를 불러 시험하였다. 후에 정순왕후가 된 김처자(이름도 없냐)는 그 자리에서 훌륭한 대답을 하여 정순왕후가 되었고 그 문답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어떤 꽃이 제일 좋으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다른 사람이 목련, 연꽃 등 아름다운 꽃의 이름을 부르는데서 김처자는 목화꽃이라고 대답했다. 목화꽃은 아름답거.. 2009. 1. 25.
삶의 목적 꽃의 목적은 무엇일까? 꽃은 무엇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고 화려하게 피어 아름답게 살다 꽃잎을 떨굴까? 생식을 위해서? 그렇다면 생식하지 못한 꽃은, 가을의 끝자락에 피어 눈을 맞고 벌 한마리, 나바 한마리 못 보고 지는 꽃은? 그럼 그런 꽃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꽃의 목적이 없이 그저 꽃은 피는 속성이기에 피었고 그 이외는 모두 부수적인 것일까? 나비가 들고 열매를 맺고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것 모두. 그저 '그러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그 곳에 꽃의 의지와 꽃의 삶은 없을까? 사람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삶을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까. 만약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실패한 것일까. '자기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조심하라' 라는 말이 있다.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에.. 2008. 11. 28.
너에게 말하지 않은 욕망 K20D, F.4.5, 1/60초, ISO-400, 40mm. 국민대 7호관 앞 육교 엘리베이터 근처에 있는 화단 너에게 말하지 않은 나의 욕망 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너에게 소중한 사람이, 너의 뇌리에 박힌 사람이, 너의 마음에 담긴 사람이, 네가 잊지 못할 사람이 되고 싶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너의 정신에 뿌리박힌, 너의 무의식 속에 들어앉아 너의 습관에 자리잡은 근본적인 기억이 되고 싶다. 네 생활과 네 언동에 나의 그림자가 비치고, 네가 무언가를 그리워 하면 내가 그 그리움의 근원이 되고 싶다. 너의 행복이 아니라 너의 슬픔에 맺힌 뮤즈가 되고 싶다. 사람이란, 꼭 그렇게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되고 싶어하고,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 2008. 11. 27.
첫눈이여 오라 지난 여름 쮼과 함께 봉선화 물을 들였다. 봉선화 꽃 잎을 따고, 잎을 따고, 백반을 넣고, 그들을 찧고, 손톱에 올려 놓고, 비닐을 길게 오려서 손톱을 싸매고, 한 잠 자고 일어나면 쭈글쭈글 해진 손가락 끝에 봉선화 꽃잎이 핀다. 봉선화 물을 들이면서 쮼에게 물들인 손톱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어머니의 어머니를 통해서 딸에게 전해져 온다는 것을 얘기해주니 신이 나서 손톱을 자르지 않겠다고 했다. (1cm를 넘어 갔던 그 엄지손톱은 급하게 가방을 챙기다가 부러져버렸다.) 얼마전에 서울에 첫눈이 내렸는데 쮼은 수업을 듣고 있느라 첫눈을 못봤다고 아쉬워 했다. 손톱 끝에서 떨어질락 말락 걸려 있는 봉선화 물을 보면 아슬아슬한 마음이 든다. 쮼은 자신이 보지 못한 첫눈은 .. 2008. 11. 25.